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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이 불꽃 지핀 박록주에 화답한 구미시

구미시 판소리 거장 명창 박록주 선생, 도로명 지정
서일주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01일

구미시가 구미출신 판소리의 거장 명창 박록주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고아읍 관심리에 위치한 박록주 생가 인근 도로인 관심로를 ‘박록주로’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구미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인 명창 박록주선생의 40주기를 맞아 명창 박록주 기념공연, 2019년 제19회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전을 유치하는 등 박록주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명창 박록주기념사업회(이사장 정택균)와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에 힘입어 박록주로가 탄생했다. 주소 사용자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가 인근에 위치하면서도 기존 주소 사용자수가 적은 관심로를 대상으로 정했다.

박록주로 이외에도 구미에는 역사적인 인물을 딴 도로명으로 여헌로(여헌 장현광), 경은로(경은 이맹전), 야은로(야은 길재), 왕산로(왕산 허위), 단계동(서)길(단계 하위지), 박정희로가 있다.

◇국악 동편제 국보적 존재 박록주 명창

동편제(東便制)창법의 국보적 존재로 흥보가 명창이면서 판소리계 우먼파워를 심은 인간문화재인 박록주(朴綠珠, 1905~1979) 명창은 열두살 때부터 소리길을 닦았다.
20대에 벌써 국창급 대명창들의 고제를 두루 이어받아 여류명창으로 명성을 떨쳤다.1928년에는 콜롬비아 레코드사에 심청가를 취입했고 연 이어 빅터 태평양 레코드사에 판소리 네바탕을 모두 출반하기도 했다.

특히 1933년 조성성악연구회 결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박록주는 1935년 춘향극(조선성악연구회 주최, 정정렬 연출) 공연에서 춘향역을 맡아 열연해 장안의 화제를 낳았다.

40년대 후반에는 남창 편의 위주로 운영된 국악계에 여성국악동호회를 창립해 여류 국창으로 군림한데 이어 남자 명창들의 맥이 거의 끊어져버린 인간문화재 시대에는 김여란과 함께 쇠퇴하는 소리판을 굳건히 지켜냈다. 타계 일년전인 1978년 고향 선산에서 열린 고별공연에서는 백발가를 불러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구미시민들이 박록주 선생에 대한 계승작업은 남달랐다. 김영일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를 주축으로 한 인사들은 1994년 구미문화연구회롤 발족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미지역 문화예술 관련 연구사업과 명창 박록주 선생의 추모 사업을 매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등 구미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선도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2000년 초반 발족한 명창 박록주 기념사업회로 진화해 나갔고, 구미문화예술진흥원으로 발전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명창 박록주 전국 국악대전은 대통령상을 수여할 만큼 전국 국악대전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구미가 자랑할 수 있는 문화의 상징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을 얻고 있다.



서일주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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