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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기획> 세월은 가도 잊을 수 없는 비극, 구미지역 미군 폭격기 오폭 • 양민학살 사건


김경홍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24일

시무실(형곡), 선산, 구포동 선량한 주민 목숨 잃어
진실화해위, 2010년 조사했으나, 의미 없이 종료
위령탑 건립 추진위원회 구성한 형곡동,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


↑↑ 시무실(형곡) 미군 오폭사건. / 사진= 이규원 전 시의원 제공



[경북정치신문 = 김경홍 기자]  세월은 가도 가슴에 맺힌 한은 지워지지 않는다. 1950년 6.25 동란 당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과 미군 폭격기 오폭 사건의 비극은 경북 구미도 비껴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지금도 지천에 떠돌고 있을 원혼과 악몽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한은 응어리진 채 남아 있다.


◇시무실(형곡) 미군 폭격기 오폭사건
2012년 2월 8일 5분 발언을 통해 형곡동 오폭사건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촉구한 구미시의회 당시 손홍섭 의원과 이규원 전 시의원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시무실과 사창으로 불리던 형곡동은 130여 호가 사는 산간농촌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금오산 자락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지리적인 특수성 때문에 김천, 북삼을 비롯한 사곡, 상모, 임은, 오태, 광평 등 인근 지역에서 피난을 가지 못한 주민들이 피신처로 몰려들 만큼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치열했던 1950년 8월 16일 (음력 7월 2일) 오전 10시경, 형곡동 주민들과 피난민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냇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미군 폭격기가 무차별 폭격을 가해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당시는 북한군이 총공세로 임시 수도인 대구 방어선의 함락이 우려되던 때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유엔군은 대구를 사수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해 다부동 전투를 전개했고 북한군은 낙동강 반대쪽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형곡지역 시무실과 사창 두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고, 이 와중에 형곡동 주민과 피난민 등 13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는비극이 발생했다.

또 당시 피해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이 된 마을 주민인 고 김왕개 씨 등 일가족 12명이 사망하고, 고 이종록 씨 일 가족 9명도 사망했다. 미군 측의 오폭에 따른 명백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 선산, 구포동 미군 폭격기 오폭 사건
1950년 8월 16일(음력 7월 2일) 미군 폭격기의 오폭에 따른 구미시 시무실(사창마을), 지금의 형곡동을 맹폭하면서 1백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 이외에도 시 관내 타지역과 이웃해 있는 시군에도 이와 유사한 비극이 발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6.25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의 비극 역시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동시에 영혼을 추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6.25전쟁을 전후해 미군 폭격기의 오폭사건으로 비극을 겪어야 했던 곳은 형곡동을 비롯해 선산 송림동, 구포동,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등이었다.

경북도의회 특위 보고서(2000년)에 따르면 형곡동(시무실 혹은 사창마을)은 1950년 8월 16일 미국 폭격으로 130여 명이 사망했다. 또 전민특위 공동 백서에 따르면 선산읍 송림동에서도 1950년 8월 31일, 미군 폭격으로 38명이 사망했다.

또 1950년 음력 7월 2일에는 미군기가 마을로부터 4킬로미터 떨어진 금전동 앞 하천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주민 50여 명에게 총을 쏘면서 18명이 사망했다. 이외에도 도로변의 피난 행렬도 미군기의 폭격을 받아 5~6명의 희생자를 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50년 7월 25일에는 또 폭격기 2대가 피난민 수천 명이 생활하는 김천시 남면 연봉천 냇가에 기관총을 발사해 희생자를 발생시켰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미 1 기갑 사단장 호바트 게이 소장과 일부 장교들이 칠곡군 왜관교 폭파 명령으로 다리가 폭파하면서 어린이와 여성 등 많은 피난민이 살해되거나 익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민 학살 사건
양민 학살 사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 6월 28일 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양민 학살자 신고 기간 중 당시 선산에서도 100여 명이 신고했다. 이들은 주로 1950년 8월 1차 후퇴 때 경찰에 의해 학살당했거나, 북진 당시 군인에 의해 학살된 양민이었다.

희생된 이들은 농민 69명, 공업 4명, 상업 6명, 공무원 3명, 기타 학생과 무직 등이었다. 이러한 비극을 알고 있는 유족들은 여러 차례 당시의 사찰 형사에게 학살 날짜라도 알려달라고 하소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동아일보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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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선산읍 이문리에서도 피난을 갔다가 너무 일찍 돌아왔다는 이유로 군인이 마을 사람 20~30명을 총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구미시 법성사 인근에서도 억울한 양민학살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비극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
지울 수 없는 형곡동 오폭사건의 악몽 속에서 살아온 생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참극이 발생하고 40년이 지난 1992년 고 이종록(발기인 대표/ 이규원 전 의원 선친)옹을 중심으로 ‘위령탑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미국의 미 자도 꺼내지 말라’는 국방부로부터의 회신을 받고 이들은 좌절해야 했다. 이어 2005년에는 구미시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진정서를 냈으나 시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1년 후인 2006년 11월 28일 이규원 전 구미시의회 의원은 진정서 마감 시한을 이틀 앞두고 부랴부랴 진정서를 작성하고,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과거사위에 자료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2007년 1월 위령탑 건립 추진위는 오매불망 그리던 ‘결정통지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어 2년 3개월이 흐른 2009년 7월부터 8일까지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관을 파견해 2009년 4월7일부터 8일까지 형곡 지구, 인동 유학산 지구, 고아(선산) 지구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사건명은 ‘ 미군 관련 희생 사건, 결정 이유 = 신청사건 다-9042 미군 관련 희생사건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진실규명범위에 해당하여 조사개시를 결정함’이었다.

시무실(지금의 형곡동) 미군 오폭사건에 대한 현장 조사에서 조사관이 만난 형곡지구 면담자는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 등 35명이었다. 더 많은 피해자가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이나 피해자 가족들이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 조사 대상자는 미군 폭격기의 오폭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130여 명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조사 기간 동안 피해자나 그 가족, 현장을 목격했던 주민들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미군 폭격기 오폭 사건 당시로 되돌아가야 했고, 그 악몽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당시 조사관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 조사를 약속하고 돌아갔다. 특히 미군 폭격기의 오폭에 따른 피해와 관련 " 다른 지자체에서는 위령탑 건립 등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노력이 있지만, 구미에는 그마저도 없는 것 같아 애석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진실화해위가 가동된 당시만 해도 전쟁 과정에서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피해 주민들에 대해 정부는 1천340억 원의 피해 보상을 할 것으로 알려졌고, 형곡 지구 피해 관련자들 역시 입법발의 중인, 법안이 의결되면 보상에 착수할 것으로 기대를 보았으나 결국 무산됐다.

더군다나 2010년 6월에는 2009년 형곡지구를 조사했던 조사관이 타 부서로 옮기면서 업무를 이관받은 다른 조사관이 "1차 조사자를 대상으로 다시 2차 조사를 해야 하겠다"는 통지를 해 왔다. 1년 전 조사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기억하기조차 싫은 당시 상황을 다시 녹취하겠다고 하자, 당사자들은 오열 해야 했다.
형곡 지구 피해자에게 마음의 상처만을 남긴 진실화해위는 2010년 6월 말 업무를 끝내면서 허망함까지 아픈 가슴 위에 얹혔다.

↑↑ 구미시 형곡동 위령탑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손홍섭▪ 박교상 시의원)가 2016년 8월 4일, 6.25 전쟁 폭격 희생자 위령탑(형곡동 산33-5) 현장에서 유족 및 주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형곡동 폭격 희생자 위령탑 추모제 및 제막식을 가졌다./ 사진 = 구미시 제공

◇ 형곡동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
2012년 5월 17일 발족한 구미시 형곡동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는 2013년 8월 위령탑 건립 및 추모 행사를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총 12명으로 구성된 추진위는 충북 단양의 6.25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등 2곳을 방문하는 등 밴치마킹에 나섰다. 이어 12월에는 위령탑 건립 향후 추진계획, 희생자 접수 안내 및 기타 토의 등 주민설명회를 통해 건립 장소를 구미 시립중앙도서관 공원 내로 의결하고 2013년 7월까지 위령탑을 건립하자는데 뜻을 같이했다.

추진위는 설명회를 시작으로 2013년 2월 명각 대상자를 확정하고 4월까지 조형물 공모, 6월까지 위령탑 건립공사 시행, 7월까지 공사를 마무리 짓고 같은 달 3일, 민간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제를 열기로 했었다.
하지만 조형물 공모, 위치 선정, 일부 인사의 반대 등이 겹치면서 당초 계획보다 3년이 지난 2016년 8월 4일 추모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2년 고 이종록(발기인 대표/ 이규원 전 의원의 선친)옹을 중심으로 ‘위령탑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지 24년, 4반세기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위원회는 1950년 6.25전쟁 당시인 8월 16일(음력 7월 3일), 미군 폭격기의 오폭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형곡동 주민 130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희생자 발굴, 명각 대상자 확정, 조형물 공모 등을 거쳤다. 이어 2016년 7월 31일에 사업비 1억2천만 원을 들여 위령탑 건립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참석한 유족들은 “지난 60여 년 동안 지울 수 없는 악몽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피 맺힌 한을 위령탑 건립으로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돼 감사를 드린다”면서 “ 억울하게 희생된 어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달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경홍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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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인
여보세요!
북괴군, 중공군때문에 6*25가 일어났고, 국민이 얼마나 죽었는데, 이것은 조용하고
미군오폭으로 사망한 국민을 이야기 합니까!  미군이 없었다면 이자유대한민국에서 살아갈수있다고 봅니까!
06/28 14:0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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