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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과 고발 사주 등 이재명과 윤석열 두 유력 정당 후보에 대한 수사가 대선 막바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gbp1111@naver.com 사진=캠프 |
[경북정치신문 사설=이관순 발행인] 내년 3월 치리지는 20대 대선은 과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이재명, 윤석율 후보로 확정한 지 10여 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박빙의 승부수를 보이고 있는 1-2개 여론조사를 제외한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를 여유있게 앞서나가고 있다.
하지만 선거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이 2002년 대선의 재판(再版)이 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한다.
대장동과 고발 사주 등 이재명과 윤석열 두 유력 정당 후보에 대한 수사가 대선 막바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새로운물결 김동연 등 제3후보와의 합종연횡 가능성까지 남아 있어 대선 투표일 직전 어떤 드라마가 쓰여질 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회창과 노무현이 맞붙었던 2002년 대선은 어땠을까. 대선을 앞둔 1년 전인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비리로 민주당은 확산하는 정권 심판론의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20%대로 추락했다.
대선이 있던 2002년 5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거머쥔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은 40%에 육박하면서 예상못한 기적같은 경선 승리를 이끌며 대선 후보로 나선 노풍을 여유있게 재압했다.
이후에도 전개되는 상황을 예측불허였다. 2002년 월드컵 열풍을 등에 업은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은 최고 30%까지 상승했다.
결국 이회창 37%, 정문준 21%, 노무현 24%, 박근혜 10%, 권영길 5%의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에 13% 이상을 뒤지던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43,5%를 얻으며 이회창 후보를 앞서나갔다.
이 당시 이 후보에게는 호재와 악재가 교차했다. 박근혜 대표와 이인재의 지지로 기저효과를 얻었지만, 아들 병역비리가 터지면서 노 후보에게 4% 이상 더 벌어졌다.
결국 이후 노사모 출현과 정몽준 후보의 지지철회가 이어졌지만 선거막판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2002년 대선 최종 득표율은 노무현 48.9%. 이회창 46.6%였다. 최근 들어 선거전문가들은 2022년 대선은 2022년과 흡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박빙의 승부수는 물론 두 후보를 둘러싼 의혹의 파괴력은 하루아침에 지상과 지옥을 오르내리게 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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