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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청년’이라는 감투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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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라는 감투를 거부한다

제3의길 우원재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22/01/11 09:51 수정 2022.01.11 09:51
- 수십 년 전 유행했던 서구식 정체성 정치가 이제 한국에서 본격 기승을 부릴 듯
- 우대 정책은 북유럽 모델을 통해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음이 드러났는데도 여전
- 새로운 시대정신 내세우고, 개인에 초점 맞춘 정책 개발이 진짜 청년을 위한 길

낡은 좌파식 정치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 갈등의 전형이 남성과 여성으로, 중장년과 청년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미 수십 년 전 유행했던 서구식 정체성 정치는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기승을 부릴 것 같다.
사진=경북정치신문

[경북정치신문 오피니언=제3의길 우원재] 관종들의 명함이 되어버린 ‘청년’이라는 타이틀. 청년으로 시끌시끌한 이 시기, 예전 비례대표 지원서에 청년 어쩌고 하는 문항에 썼던 답변을 올려 봅니다.

한국에서는 때늦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유행하고 있다. 맑시스트부터 롤지언에 이르기까지, 집단을 기준으로 계층을 나누고 계급을 나눠 그 갈등과 보상 심리를 동력으로 하는 낡은 좌파식 정치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 갈등의 전형이 남성과 여성으로, 중장년과 청년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미 수십 년 전 유행했던 서구식 정체성 정치는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기승을 부릴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 철학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정치인들이 없다는 거다. 심지어는 보수 정당조차 본인들이 기치로 내건 정치 철학에 대한 아비투스가 없으니 정체성 정치에 기인한 언더도그마에 쉽게 휩쓸린다. 할당제처럼 청년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떤 집단에 있다는 이유로 우대하는 정책(Affirmative Action)이 제대로 된 비판조차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미 북유럽 모델을 통해 이러한 것들이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청년이라는 감투를 거부하고, 정체성 정치라는 낡은 접근법을 거부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내세우고, 보수 정당으로서 집단이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성별, 나이, 배경 등 정체성 집단을 떠나, 개인이 개인 그 자체로서 존중받고 평가받는 사회이다. 정체성보다 능력이 우선되는 사회.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년이라는 감투를 거부한다. 정당에서 당직을 맡았을 때도,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청년으로서 기성 정치의 아젠다로 소모되는 것을 거부했다. 청년이라면서 구태 정치를 답습하고, 청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해결책이랍시고 근시안적인 지원책을 쏟아내는 것이 정말 청년을 위한 일일까? 아니면 그저 젊다는 것을 이력으로 정치를 하려는 정치인들의 핑계일 뿐일까?

보수 정당에서는 청년 문제 해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좌편향된 청년 정책을 포장만 바꿔서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비단 청년 이슈만 이런 게 아니다. 정체성 정치에서 출발하는 모든 약자 집단에 대한 접근법이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나는 청년이라는 감투를 거부하고, 정체성 정치라는 낡은 접근법을 거부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내세우고, 보수 정당으로서 집단이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청년을 위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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