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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박정희정신과 수출지향 공업화 전략(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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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박정희정신과 수출지향 공업화 전략(11)

경북정치신문 기자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19/08/20 15:47 수정 2019.08.20 15:47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미국은 대한민국에게 1950년대에 넉넉한 원조를 제공하다가 1960년대 전반에 원조를 줄였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부로 하여금 자립적인 새 외화 수입원을 절박하게 찾도록 내몰았다. 궁즉통(窮則通),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수출’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제1차5개년계획(1962~1966)이 반환점을 넘은 1965년경이다. 그해에 박정희는 ‘증산(增産), 수출, 건설’을 3대 국정 목표로 제시하여 ‘수출입국(立國)’ ‘수출 제일주의’를 분명히 했고, 제조업은 20% 전후의 고도성장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1960년대 초반까지 통제경제 정책을 썼다.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초기 시행착오로부터 얻은 교훈과 일본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수출지향 공업화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물론 박 대통령 시절의 경제정책은 자유경제도 통제경제도 아닌, ‘박정희식 정부주도 경제’였다. IMF나 IBRD에서 요구하는 자유주의 경제모델로는 후진국 경제가 ‘이륙(Take-off)’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익종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 수출지향 공업화 전략은 당시 후진국 경제개발론에 없었습니다. (중략) 미국은 투자능력도 없는 한국의 무모한 투자계획을 비판했지만, 공산품의 수출에 주력하라고 권고한 바는 없었어요. 필사적으로 경제개발 돌파구를 찾으려는 박정희 정부가 발견한 후진국 경제개발의 새 길이었습니다.”

1960년대 말 한반도 안보 정세는 불안한 상태였다. 1968년 1월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일어났고, 11월에는 동해안의 경북·삼척 지구에 북한 무장공비 120여 명이 침투했다. 이제 한국은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에 따른 전쟁 위기 속에서 동맹인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홀로서기 새 전략을 짜야 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자립(自立)·자위(自衛)·자조(自助)의 기치 아래서 자주국방을 제창했고,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등 방위산업 육성 계획을 세웠다.
박정희는 1973년 6월 중화학공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철강·비철금속·기계·조선·전자·화학 공업이 6대 전략업종이었다. 차후 8년간 총 88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해 1981년까지 전체 공업에서 중화학공업 비중을 51%로 늘려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와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계획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물론 경제기획원도 부정적이었지만 박정희는 집념을 갖고 밀어붙였다.

  박정희는 당대의 사고(思考)를 뛰어넘는 ‘그랜드 디자인’에 능했다. 국도(國道) 포장도 안 되었던 시절에 고속도로를 생각했고, 경공업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 중화학공업을 생각했다. 무자본, 무경험, 무기술 상태에서 민족의 목숨 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허허벌판을 포항제철로 탈바꿈시킨 ‘영일만 신화’를 창조했다. 1980년 전체 제조업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은 54%가 되었으며, 그해 공산품 수출에서 중화학 제품의 비중은 88%에 달했다. 당시 야당은 ‘수출주도형’ 박정희 모델이 한국경제를 미국과 일본에 종속시킬 것이라고 발목을 잡았다. 대신 농업과 중소기업의 발전을 우선으로 추진하는 ‘내부지향적’ 개발정책을 제시했다. 박정희는 만난을 무릅쓰고 조립가공형 산업을 일으키고 중화학공업화를 시작하여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 오늘날 한국은 1970년대에 박정희가 건설했던 중화학공업에 의존해 먹고 살고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광복 74주년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낸 박정희 대통령과 중화학공업으로 국력을 키워낸 기업인들에 대해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올해로 광복 74주년을 맞이했다. 여전히 국토는 분단되어 있고,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이고,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는 독도 상공에서 연합훈련을 하고 있으며, 북의 미사일 도발과 도를 넘은 조롱은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미완의 광복 속에서 잠재성장률 급락에 따른 경제 파탄과 안보 불안은 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우리는 이 총체적 국가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낭만적 평화경제는 말의 성찬일 뿐 답이 될 수 없다. 수출입국과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박정희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벗어나는 길은 문재인의 반일(反日)이 아닌 박정희의 극일(克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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