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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와 시민 정신이 합일되어야 ‘안전 구미’ 지향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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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와 시민 정신이 합일되어야 ‘안전 구미’ 지향할 수 있다"

이관순 기자 입력 2022/11/02 10:27 수정 2022.11.02 10:27

이태원 사고가 발생한 이후 각 지자체는 안전 불감증으로부터 ‘안전 경각심’으로 인식을 틀어앉았다. 하지만 안전은 타의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사진=경북정치신문

[사설= 발행인 이관순] 이태원 대형 인명사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예고된 사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인재라고 한다. 분명 이태원 사고는 인재였다. 그렇다면 중앙부처의 장은 국민들이 빗발치는 항의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자리에 연연한다면 구차할 뿐이다. 생명의 가지 존재는 그 어떤 권력도, 힘도 극복할 수 없는 대진리이다.

이태원 사고가 발생한 이후 각 지자체는 안전 불감증으로부터 ‘안전 경각심’으로 인식을 틀어앉았다. 하지만 안전은 타의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구미시는 연말까지 100여건에 이르는 각종 행사에 ‘안전 계획 및 실천 항목’을 접목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수많은 단체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전에 대한 공공기관의 타의적인 상황에서도 수많은 단체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 형국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공공기관에 의탁할 셈인가.
그렇다고 해서 안전 불감증을 안전 경각심으로 각인하려는 구미시의 노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상에서는 운전자 혼자만의 안전 운행, 순찰차량의 단속에 의해서만 안전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는 원칙에 따라 운전을 하고 있지만 상대가 치고 들어온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니던가. 과학에도 그렇지만 모든 사회현상에는 상대성의 논리가 접목되는 법이다.

따라서 이태원 사고를 계기로 수많은 시민, 사회단체들은 ‘구미시 혹은 공공기관에 안전을 위탁’할 게 아니라 스스로가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과 자세로 돌아가 자신의 안전, 공동체의 안전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생명 위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 안전이다. 특히 인간의 사고와 행위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기계들에 의해 훼손 혹은 존멸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명을 위해하는 요소들은 곳곳에 잔존하고 있다. 마치 여름날 살갗을 후벼파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모기와도 같다.

생명을 위협하는 안전을 공공기관에만 의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과 시민 및 사회단체, 개인이 하나가 되었을 때 생명을 위협하는 잔재들을 극복할 수 있다.

사회의 현상은 군중심리와 민중심리로 구별된다. 한완상 사회학자는 1980년대 젊은이들이 한창 데모현장으로 향했을 때 이렇게 설파했다.

‘아직도 우리는 군중의 사회에 살고 있다. 민중의 사회로 진화해야 한다.”

최근 발생한 이태원 사고는 군중의 심리가 지배했기 때문에 발생한 후진국형 불행이었다.
군중 심리에는 감성이, 민중심리에는 이성과 질서의 의식과 실천행위가 작동한다.

이태원 사고를 계기로 산업화의 기적을 이룬 구미에서 의식과 의식에 의한 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진화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내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변질이 아닌 진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졸부의 선진국이 아닌 문화형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야만 타의에 의해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위탁하는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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