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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육영수 여사와 명품...'요순 임금과 골프'

이세연 기자 입력 2023/07/19 08:38 수정 2023.07.19 08:40

비오는날 도리사 전망대에서
사진=경북정치신문

[경북정치신문=동채 칼럼] 머루와 다래가 허기를 다독여 주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열병을 달고 살았다. 문풍지 사이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겨울바람이 매섭기만 하던 겨울 늦밤, 어린 시절은 혹독한 겨울밤 속에서 열병에 맞서야 했다.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끓여 마신 약물도 허사였다. 그 혹독한 겨울밤의 열기의 식혀준 것은 어머니의 손이었다. 약물도 허사였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이 이마를 문지르면 씻은 듯 낳곤 했으니, 그래서 우리들은 어머니의 손을‘약손’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가고 없는, 어머니의 삶은 어린 시절의 삶과 동일체였다. 얼굴만 부어올라도, 잔기침을 해대도 어머니는 이미 어린 시절의 동일체가 되곤 했다. 그래서 많은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는 영원한 가슴이 아닐까.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푸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길
- “나환자 한하운 시인의 전라도길 전문(소록도로 가는 길)”

한하운 시인이 애달프게 노래한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는 육영수 여사가 자주 찾아 나환자의 뭉그러진 손을 잡아주던 곳이다. 당시만 해도 한센병은 전염병의 일종으로 분류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육 여사는 종종 이곳을 찾아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지는 한센병 환자’ 들의 애환을 끌어안곤 했다.

그 나환자들에게 육영수 여사의 삶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길러낸 유년과의 동일체였다.

이러한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야성이 강한 호남 특유의 성향과는 달리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는 유달리 보수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주기도 했다.

그 당시 가장 천대받던 곳은 다름 아닌 나환자촌, 육 여사는 소록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77개 나환자 촌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특히 나환자촌을 방문한 육 여사는 뭉그러진 손을 덥석 어루만지면서 함박웃음을 안기곤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나환자들은 감동의 울음을 터뜨렸다. 이러한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흐르는 것일까. 세월은 흘러 영면에든지 47년 세월이 흘렀지만 흐르는 1백 리 낙동강 물속에 육 여사의 따스한 웃음은 우리들의 어머니로 투영된 것만 같다.

 

장마기의 집중호우가 지속되면서 희생자들이 늘고 있다. 산사태 앞에 소중한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경북 예천에서, 십 수명의 생명을 앗아간 오송 지하차도의 비극적인 눈물이 전국을 덮고 있다. 물에 빠진 국민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하지만 세상은 야박하다.‘국모’로서 열병을 앓는 국민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는 ‘어머니의 약손’이 되어야 할 김건희 여사는‘국민들이 열병을 앓는 그 시간에 리투아니아 명품 샵 다섯 곳을 방문했다’는 논란에 빠져있다. 명품 논란은 이 나라 여사들의 전유물일까. 문재인 정부 당시 김정숙 여사 역시 브로치 가격이 1억 원이 넘는 명품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해마다 8월이 오면 육 영사 여사가 아련한 이유다.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수해 기간 중 골프 논란이 일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잇따라 올린 글에서 "대구는 다행히 수해 피해가 없어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주말을 보내고 있다"면서 "주말에 테니스를 치면 되고 골프를 치면 안 된다는 그런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는 특히 "그걸 두고 트집 잡아본들 나는 전혀 상관치 않는다"라면서 "대통령이라면 다르겠지만 그 외 공직자들의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라고 강조했다.

 

그가 만일 대구가 아닌 타지에 사는 혈육이 산사태의 위험에 빠져있다고 한다면 "대구 시민은 다행히 재해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지 않으니 비교적 자유스럽게 주말을 보내고 있다. 너희 일은 너희가 알아서"라고 할 터인가.

2,390년 전 '요' 임금은 백성들과 같은 초가집에 살았다. 굶는 백성이 있으면 식사하지 않았고, 추위에 떠는 백성이 있으면 같이 떨었으며, 죄지은 사람이 있으면 처단하지 않고 괴로워했다. 왕위에 있으면서도 새벽이 나가 농사를 짓기도 했다.

 

권력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치 철학은 요가 재위하는 5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뤘다. 한자를 만들 만큼 문화 융성도 구가했다.


나이가 들자, 자질이 없는 아들 단주를 물리치고 왕위를 순위라는 현자를 불러 보위에 물려준 것도 '요' 임금의 지고지순한 철학이었다.

세월이 흐를 만큼 흐른 ‘생의 늦가을’에도 우리들의 가슴에 어머니가 살아 있는 까닭은 ‘어머니의 동체 철학(同體)’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열병을 치유하던‘어머니의 약손’이 되어야 할 지도자가, 모든 백성의 어머니가 되어야 할 일국의 여사 마저도, 오히려 가라앉는 국민들의 열병을 도지게 하고 있으니, 차라리 그들에게 독수공방을 권하고 싶다.

[경북정치신문, k문화타임즈 공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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