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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데스크 칼럼>민심을 받들어야 진정한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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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민심을 받들어야 진정한 리더

경북정치신문 기자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18/11/19 16:59 수정 2018.12.03 16:59
구미시 새마을과 명칭 논란

ⓒ 경북정치신문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오후,금오산 어귀의 주막집에 자리잡은 하산객 일행이 탈무드에 씌여있는 맹인의 등불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 사내가 어둡고 좁은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맹인이 등불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단 말이야.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나이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니냐고 물었단 말일세. 그러자 맹인이 이렇게 답했어”
“눈 뜬 사람이 맹인인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당신이 부딪히는 일 없이 무사히 비켜갈 수 있는 게 아니요”


그러자,갑론을박이 일었다. 한쪽에서는 마주오는 사내의 안전한 산행을 염려한 맹인에게 후한 점수를 준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냐’는 인색한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등불을 든 맹인의 산행이 배려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놓고 일행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갑론을박은 고성으로 번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상황으로 반전되면서 얼음장 같은 분위기 속에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우리는 현재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다르다고해서 흑백논리의 도마 위에서 우군과 적군으로 재단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물론 자신의 의견이 아집에 빠져 공익적 가치관을 훼손한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꽃인 진정한 지방자치는 다양한 양분을 먹고 성장해야 주민 모두가 갈망하는 공익적인 가치 이념이라는 풍성한 과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구미시청 새마을과를 폐지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입법예고하면서 구미가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고, 오랜 진통 끝에 새마을과 복원이라는 결론을 도출시켰다.상처뿐인 논쟁이었다는 혹평이 없지 않지만, 값진 교훈을 남겼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흘러나온다.


남북분단이 고착화 된 이후 이 땅은 이념의 노예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패가 갈린 이념 논쟁은 국민들을 흑과 백, 승자와 패자의 논리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흑백 논리는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안위를 위해 만들어놓은 정치적 수단에 다름 아니었다.


정과 반이라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 합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를 익히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그 순수의 세계에 정치적 수단인 이념이 마치 스나미처럼 몰아쳐오면서 나라가 온통 흑과 백의 노예로 전락했던 것이다.


새마을과 폐지를 둘러싼 갈등은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흑백논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표를 보여 준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래도 고민 끝에 새마을과 복원이라는 결론을 도출시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가 아니던가.


사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빈곤퇴치, 상부상조, 자립갱생을 기치로 내건 새마을 운동의 순수성을 일부 치인들이 훼손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리카나 동남아로 달려가 기아선상에서 시름하고 있는 지치고 힘든 등을 다독이면서 비지땀을 흘리는 빈곤퇴치운동과 상부상조와 근검절약을 기치로 내건 아나바다 운동,우리들이 살고 있는 주변을 스스로 정화하는 자원봉사의 정신은 계승 발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성에 정치성이 개입되면서 새마을 운동의 근본취지는 적지않은 상처를 입은 것이 사실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대선이나 총선, 심지어는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민심을 선거도구로 활용했다는 비판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이러한 전철이 새마을과 폐지 여부를 놓고 소동을 벌이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면 욕설이라도 해댈 터인가.


정치인들은 새마을 운동이 순수한 시민운동으로 계승 발전될 수 있도록 가만히 놔 두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무관심이 바로 새마을 운동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양분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구미에 불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경쟁이 취지만 순수하다면 구미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지금의 구미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일당 독식의 정치관례였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구미는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는 새로운 정치구도의 시작을 알렸다. 문제는 일선의 정치인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반합의 세계’를 추구해야 구미시민이 행복하고, 구미가 발전된다는 대명제를 얼마나 지혜롭게 현실화시키느냐는데 있다.


보수와 진보의 경쟁이 ‘죽이느니, 살리느니’의 흑백논리, 승자와 패자의 논리 속에 함몰되면 발전적인 세계를 기대할 수 없다.상대의 주장이 옳다면 수용하고, 그 주장이 자신의 견해와 다를지라도 대화와 타협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방선거를 통해 구미정치를 보수와 진보의 구도로 만들어 낸 구미시민들의 슬기로운 판단이다. 엄명일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은 구미를 발전시키고 시민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이분법적 정쟁의 논리는 배격되어야 한다.


구미발전과 시민의 행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치세계가 구미에서 비롯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해서 거리로 뛰쳐나온다든가 그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폐쇄성도 척결되어야 한다.


맹인의 등불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놓고 격론을 벌인 금오산 어느 주점의 일행들이 너털 웃음을 지어내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던 용기와 슬기가 구미 정치세계에도 들불처럼 번져나갔으면 한다.그래야만 공존공생, 공존 번영의 구미시대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 아니던가.


리더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되어야 한다. 샛강의 물줄기를 스스럽없이 받아들여야 강물이 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치다.
<발행인 김경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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