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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적을 친구로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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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적을 친구로 만드는 법

경북정치신문 기자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19/06/17 18:38 수정 2019.06.18 18:38
지경진(한국U&L연구소)

 공동체 구성원들은 서로 의견의 차이가 있더라도 조직의 공동 목표에 대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므로 당연히 서로 친구가 되어야 하지만 적으로 대하는 경우를 사회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학교 현장에서도 학부모가 선생님을 만날 때 첨부터 적대적 관계로 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럴 경우, 교사는 넋을 잃게 된다. 기본적으로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적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학부모와 교사는 사돈 관계와 같다. 서로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하여야 한다. 결혼한 아들의 행복을 위하여 며느리에게 조심스럽게 대하고, 결혼한 딸의 행복을 위하여 사위에게 잘 대해 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양가 부모인 사돈끼리는 더욱더 조심스럽게 예우하는 것이다. 아들과 그 아내인 며느리를, 딸과 그 남편인 사위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이고, 약간의 생각의 차이가 있더라고 우선 참으며, 며느리와 사위의 부모님을 존중하는 것이다.

학부모의 자녀들은 교사들에게는 제자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스승은 기본적으로 제자들이 올곧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의 부모와 아이의 스승은 그 아이에 대한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과연 누구인가. 첫째, 부모님이요, 둘째 선생님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음에도 지도 방법에 대한 작은 의견 차이에 격분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가족은 사회 통합의 출발점이고 가정은 궁극적으로 행복의 보금자리이다. 그러므로 가정 밖 사회에서 경쟁, 대립, 갈등의 사회적 상호 작용 과정에서 쌓인 피로감이 가정에서 치유되거나 회복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경쟁과 대립을 더욱 부채질하는 곳이라 여기는 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석차를 정하는 경쟁의 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자존감을 갖고 미래를 향하여 인품과 실력을 길러 가는 곳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1등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여 더 나은 나를 단련시켜나가는 곳이라야 한다.

친구를 적으로 대응하는 전근대적 현상은 학교 밖 정치 사회에서 더욱 심각하다. 예컨대, 대통령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촛불 집회 집단과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 집단의 대립이 그러하다.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그 두 집단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면, 모두 보다 상위 개념인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원한다고 한다. 큰 범위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들은 이미 서로 적이 아니다. 적대적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본질의 차이가 아니라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조국의 번영을 위해 의견을 모으고 협력해야할 친구들이다.

상대방이 적이라면 무너뜨려야 하고, 반드시 싸워서 물리쳐야 하는 대상이지만, 친구라면 함께 잘 살아야 하고 협력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적에게는 고통과 충격을 주어야 하지만, 친구라면 사랑하고 베풀어야 한다.

외적의 침략이나 국제적 위기가 닥칠 때 여당과 야당은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나 지난 날 우리는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집권과 권력 야욕에만 몰입함으로서 백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많은 아픔의 역사를 경험했다. 넘어진 그 곳에서 또 넘어지는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조국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 정책 집행에 우선되어야 할 것은 그 정책의 실효성 있는 시행을 위한 국민적 화합이지 작은 차이에 목숨 바쳐 투쟁할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 타당성을 검토해보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적으로 여기던 관계를 친구로 만드는 유일한 길은 따뜻한 미소뿐이다. 적대적 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배려뿐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란 책이 발간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진보-보수의 정당으로 갈라져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현재 국민은 보수 정당의 분열로 진보 정당을 선택했고 그들에게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합리적인 진보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했지만 점점 실망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해묵은 좌파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정책들을 남발하면서 오히려 국민 경제는 활력을 잃어 가고 있으며, 국가 경제와 미래에 대하여 국민들이 정부를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남을 위한 배려와 봉사의 여유와 경험이 부족한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했고, 풍부한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을 집약하거나 보존하는 힘을 비축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작은 문제에 대한 의견의 차이에 사생결단하기 이전에 공통된 더 높은 가치에 합의하는데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본질에의 합의(unity in essentials)를 찾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작은 수고와 봉사와 헌신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 가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친구 같은 아빠(friendaddy), 친구 같은 엄마(frienmom), 친구 같은 선생님(friencher)를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풍조는 동시에 아빠, 엄마, 선생님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부정적 면도 야기했지만, 인간관계를 소통과 공감의 관계로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정치 사회에서 소이(小異)론에 빠져 적대시하던 사람도 대동(大同)론의 큰 틀에서 적을 친구로 만드는 frienemy(friend+enemy) 시대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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