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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구미갑 총선>통합당 강풍에 힘 못 쓴 민주당, 친박 정서..
기획·연재

구미갑 총선>통합당 강풍에 힘 못 쓴 민주당, 친박 정서도 무기력했다

김경홍 기자 입력 2020/04/19 13:20 수정 2020.04.19 13:21

 20대 정치권에 뛰어든 통합당 구자근 당선자의 인생 승리
<시의원 낙선-시의원 재선- 도의원 재선- 국회의원 경선 배제
- 국회의원 당선, 파노라마 같은 정치 인생사>
30%의 벽 넘긴 민주당 김철호 후보, 4전 5기 역사 쓰나
<국회의원 세 번, 시장 한 번 도전의 30년 정치사>
친박 표방한 우리공화당, 2008년 친박연대 바람 갈망했으나
<뚜껑 열어보니 1.85% 불과, 친박 정서 몰락>


[경북정치신문=김경홍 기자] 구미갑에 몰아닥친 미래통합당 강풍은 파죽지세였다. 힘 있는 집권 여당의 힘을 활용한 민주당 후보의 경제 재건론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서를 등에 업은 친박 정서론은 통하지 않았다.

구미갑에 불어닥친 바람이 위세를 떨친 이면에는 적어도 대구 경북지역에 한해서는 정권 심판론이 민심을 움직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미래통합당 구자근 후보는 66.57%(73,339)의 높은 득표력을 보이면서 21대 국회에 입성하는 영광을 안았다. 반면 최소한 40%대 초반을 기대했던 김철호 후보는 김철호 31.58%(35,324)의 벽 앞에 주저앉아야 했다.

친박 정서를 등에 업은 우리공화당 김경희 후보 역시 1.85%(2,075)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머쥐어야 했다. 정당 여론조사에서 5% 내외의 지지도를 보인 전례에 비추어 10%의 득표력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전망은 기대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특히 친박 정당의 저조한 득표력은 구미가 친박 정서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증빙자료로 받아들여진다.

이번에 압승을 한 구자근 당선자는 사실상 인간승리라는 역사로 기록될만하다.
20대 말에 지역 정치권에 뛰어든 구 당선자는 시의원 선거에서 수십 표 차로 낙선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재기의 의지로 무장한 그는 연이어 시의원 재선, 도의원 재선의 역사를 썼다.

하지만 2016년 제20 대 총선에서는 사실상 전략공천을 받은 백승주 국회의원의 진박위력에 눌려 가장 앞서간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경선에서 배제되는 정치인생 사상 두 번째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끝없는 그의 도전 의지를 세상은 버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후 실시한 제21대 총선에서는 구 당선자가 경선 대상에 포함된 반면 백 의원은 배제됐다. 이래서 정치 세계에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없고, 영원한 우군과 적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31%, 58%의 득표력을 보이며 선전한 민주당 김철호 후보는 41세의 나이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김윤환 후보 등과 경합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 전선에 처음 뛰어들었다. 이어 16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서 한나라당 김성조, 민주국민당 김윤환 후보 등과 경합했다.
이번이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째 도전한 셈이다. 24년에 걸친 도전의 역사였다. 그가 4전 5기의 역사를 쓸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 국회 의사당, 사진 = 국회 캡처


◇구미가 배출한 국회의원들은 ?

▶제1-2대 육홍균 ▶제3대-4대 김우동 ▶제4대 김동석 ▶제5대 신준원 ▶제6-제8대 김봉환 ▶제9대 신현확, 김창환 ▶제10대 신현확-김현규, 제10대 유정회 김윤환 ▶제11-12대 박재홍, 김현규, 제11대 전국구 김윤환 ▶제13대 박재홍, 김윤환 ▶제14-15대 박세직, 김윤환, 제14대 비례 박재홍 ▶제16대 김성조 ▶제17-18대 김성조, 김태환 ▶제19대 심학봉, 김태환 ▶제20대 백승주, 장석춘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부터 2020년 4월 20대 총선까지 포함해 70년 동안 구미가 배출한 국회의원은 총 18명이다.

1, 2대에서는 육홍균 의원이 탄생했다. 옥성면 출신의 육 의원은 1900년 10월 1일 선산 옥성에서 육병형(陸炳亨)과 예천 임씨의 독자로 태어났다.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 대학 문과에 입학했다.


1922년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비밀결사 흑우회에 가입해, 회지 〈흑우(黑友)와 소작농〉의 발간을 주도했다. 1923년에는 박열, 김중한 등과 함께 불령사를 조직했다가 그 혐의로 체포돼 투옥되기도 했다. 출옥 후 1926년 10월에 흑우회가 흑색청년연맹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1927년 고향으로 돌아와 협동조합 ‘우리 살림사’를 조직하고, 이어 옥성농우회(玉城農友會)를 통해 지역 농민운동을 이끌었다. 1939년 4월 검거돼 다시 1년 3개월간 투옥됐다가 출옥 후 중국으로 떠났다가 해방 후 귀국했다. 해방 후 대한독립촉성국민위원회 선산군지부장에 취임했다. 1983년 7월 5일에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3, 4대에서는 김우동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김덕 전 안기부장의 선친이다.
4대에서는 민의원으로 김윤환, 김태환 전 의원의 선친인 김동석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5대에서는 신준원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제6-8대에는 김봉환 국회의원, 9대~12대에는 신현확, 김창환, 김현규, 박재홍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이 기간에 김윤환 의원은 10대 유정회, 11대 전국구로 당선됐다.

13~14대에는 박세직, 김윤환 의원, 14대에는 박재홍 의원이 비례로 진출했으며, 15대에서는 역시 박세직, 김윤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16대에는 김성조 의원, 17대~18대에는 김성조, 김태환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19대에는 심학봉, 김태환 의원이 당선됐으며, 20대에는 백승주, 장석춘 의원이 당선됐다.

비례대표와 유정회, 지역구를 포함해 김윤환 국회의원은 5선, 박재홍 국회의원은 4선, 김현규 , 김성조, 김태환 국회의원은 3선, 육홍균, 김우동, 신현확, 박세직 국회의원은 2선, 김동석, 신준원, 심학봉, 백승주, 장석춘 국회의원은 초선이다


1978년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되기 이전까지인 제9대까지는 선산군 일원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배출시켰고, 제10대인 1979년 이후부터는 구미시와 선산군이 각각 1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1995년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 이후인 제15대 총선부터는 구미갑, 을 선거구로 분리해 별도로 국회의원을 배출시키다가 제16대 총선에서는 구미시에서 1명만을 배출했다. 이어 제17대 총선부터는 갑, 을 선거구에서 각각 1명의 국회의원을 배출시키고 있다.


구미가 배출한 16명의 국회의원 중에는 눈길을 끄는 인물과 몇 가지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제헌의회 육홍균 국회의원은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김동석-김윤환-김태환 국회의원은 부자 3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경우다. 김대중, 조병옥 가문과 더불어 부자 국회의원 3명을 배출한 정치 가문으로 평가된다. 조병옥 전 내무장관과 함께 민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오상재단 이사장이었던 김 의원은 일제시절인 1926년 정치안전 유지법 위반으로 3년의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김우동 국회의원은 김 덕 전 안기부장의 선친이다. 또 김현규 국회의원은 민국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박재홍 국회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이며,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사촌 처남이다. 신현확 국회의원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2007년 타계했다. 킹메이커로 잘 알려진 김윤환 국회의원은 김동석 국회의원의 아들이며, 김태환 국회의원의 친형이다. 2003년 타계했다.


박세직 국회의원은 88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냈고,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세상을 떠났다.

줄곧 토박이 출신만을 당선시켜온 구미와 선산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19대에는 포항 출신의 심학복 의원이 구미갑. 20대에는 예천 출신의 장석춘 의원이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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