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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김천 역대 총선> 통합당 강풍, 무소속 강세 지역 경북..
기획·연재

김천 역대 총선> 통합당 강풍, 무소속 강세 지역 경북 김천도 피해 가지 않았다

김경홍 기자 입력 2020/04/18 19:24 수정 2020.04.18 19:24

2018 재보궐 선거 무소속 최대원 후보 493표 차 석패
2016년 20대 총선 무소속 박판수 후보 35.74% 선전
2020년 21대 총선 무소속 2명 합쳐도 3%대 불과


[경북정치신문=김경홍 기자] 미래통합당 참패, 더불어민주당 압승 결과를 낳은 제21대 총선의 또 다른 포인트는 원내 1, 2 당이 대구․경북과 호남권에서 사실상 석권했다는 점이다.
28석이 걸린 호남(광주, 전남, 전북)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무소속 1석(이용호/ 전북 남원시 임실군 순창군)을 제외한 27석을 가져갔다. 20대 총선에서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던 20대 총선의 초라한 성적표와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대구․경북 역시 마찬가지였다. 25석이 걸린 이 지역에서 미래통합당은 무소속 1석(홍준표/ 대구 수성을)을 제외한 24석을 모두 가져갔다. 20대 총선에서 2석(김부겸, 홍의락․무소속 당선 후 민주당 입당)을 민주당에게 내준 통합당으로선 사실상 완승이었다.

이처럼 대구 경북과 호남에 몰아닥친 지역색 강한 민주당과 통합당의 바람 앞에서 무소속 역시 추풍 낙엽이었다. 특히 지역 정서를 등에 업은 총선 바람은 경북 김천도 비껴가지 않았다.

역대 총선을 들여다보면 김천은 선거 때마다 무소속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특이한 곳이다. 이철우 현 도지사가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재보궐 선거 요인 발생을 계기로 실시한 2018년 재보궐 선거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송언석 의원은 무소속 최대원 후보와 손에 땀을 쥐는 접전 끝에 불과 493표 차로 당선됐다.

또 2016년 실시한 제 20대 총선에서 역시 입지를 강하게 다진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이철우 의원에 맞선 무소속 박판수 후보는 35.74%를 얻으며 저력을 과시했다.

역대 총선에서 상주 선거구를 포함해 배출한 27명의 의원 중 11명의 무소속 의원을 배출한 김천이었지만 21대 총선에서 불어닥친 미래통합당 강풍 앞에 무소속과 민주당 성적표는 초라했다.
미래통합당 송언석 후보가 74.52%(5만9,993표)를 얻은 반면 더불어민주당 배영애 후보는 21%(1만 6,914)에 그쳤다. 더군다나 무소속 이상영 후보와 이성룡 후보는 모두 합쳐도 3%의 벽조차 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쥐어야 했다.

↑↑ 김천시 전경. 사진 = 김천시 제공

▶역대 총선 관전 포인트

▷제1대 총선 (1948년 5월 31일- 1950년 5월 30일)
1948년에 실시된 총선은 김천시 갑구와 을구에서 각각 1명씩 2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김천시 갑구에서는 무소속 권태의 후보, 김천시 을구에서도 역시 무소속 이병관 후보가 당선됐다.


▷제2대 총선 (1950년 5월 31일- 1954년 5월 30일)
6.25전쟁이 발발하던 해였다. 2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대한 국민당 우문 후보는 김천시 일원에서 48.6%를 얻어 당선됐고, 중졸 출신의 무소속 여영복 후보는 금릉군 일원에서 19.2%를 얻어 당선됐다.

▷제3대 총선 (1954년 5월 31일- 1958년 5월30일)
1954년 실시된 총선에서도 2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김천시 일원에서는 무소속 문종두 후보가 당선됐다. 지역언론사인 김천시보 사장 출신의 문 후보는 37세로 역대 당선자 중 최연소였다.

금릉군 일원에서 39.6%를 얻고 당선된 자유당 김철안 후보는 김천정치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기록을 남겼다. 당선 당시 47세인 김후보는 중졸 출신이어서 관심을 더 모았다.


▷제4대 총선 (1958년 5월31일- 1960년 7월 28일)
4.19 혁명으로 임기가 2년이었다.. 3대에서 당선된 무소속 문종두 후보와 자유당 김철안 후보가 또 당선되면서 동시에 2명의 재선 의원이 탄생했다.

▷제5대 총선 ( 1960년 7월 29일- 1961년 5월16일)
5.16 군사 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임기를 채 1년도 채우지 못했다. 김천시 일원에서는 무소속 김세영 후보가 46%, 금릉군 일원에서는 우돈규 후보가 24.5%를 얻어 당선됐다.

▷제6대 총선( 1963년 12월17일- 1967년 6월 30일)
김천시와 금릉군 일원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민주공화당 백남억 후보가 3만 2527표(47.1%)로 당선됐고, 재선을 겨냥했던 국민의당 김세영 후보는 2만 9256표로 2위를 차지했다. 3선을 노리던 재선의 여성 후보 자유당 김철안, 자유민주당 김승환, 민주당 김동영 후보도 선전했지만 쓴잔을 마셔야 했다.
결국 백남억 시대를 연 총선이었다.


▷제7대 총선(1967년 7월1일- 1971년 6월 30일)
김천시, 금릉군 일원에서 1명을 선출한 선거에는 5명의 후보가 출전했다. 민주공화당 백남억 후보는 3만 8244(50.6%)표로 당선됐고, 신민당 이병화 후보가 3만 107표로 2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자유당 김재곤, 민중당 김승환, 대중당 김동영, 한국 독립당 박용준이 후보로 나섰다.


▷제8대 총선 (1971년 7월1일- 1972년 10월 7일)
김천시, 금릉군 일원에서 1명을 선출했다. 3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민주공화당 백남억 후보 4만 173표(54%), 신민당 조필호 후보가 2만 4569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고, 국민당 정정문 후보는 9천 685표를 얻었다.

▷제9대 총선 (1973년 3월 12일- 1979년 3월 11일)
김천시,금릉군,상주군에서 2명을 정원으로 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7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무소속으로 상주 출신인 김윤하 후보가 43만 6980(28.6%), 민주공화당 백남억 후보가 4만 1943표(25.5%)로 1,2위를 차지하면서 당선됐다.

이외에도 신민당 이기한 후보가 2만 4039표를 얻으며 선전했고, 민주통일당 조필호, 무소속 박준무, 무소속 박희동, 무소속 홍성표 후보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뛰었다.

▷제10대 총선 (1979년 3월12일- 1980년 10월 27일)
전두환 정권의 쿠데타로 임기가 1년 6월에 그쳐야 했다. 김천,금릉, 상주일원에서 2명을 선출했다.
이 선거에서는 6-9대에 걸쳐 4선을 고수해 온 백남억 후보가 박정수 후보에게 패배했다. 결국 백의원이 지역정치를 떠나면서 박정수 의원 시대를 예고했다.상주출신 김윤하 의원 역시 패배해 상주 정치를 탈바꿈시켰다.

7명의 후보가 나섰다. 무소속 박정수 후보가 4만 3319표(24%), 무소속 정휘동 후보가 4만 2477(23.5%)로 1,2위를 차지하면서 당선됐다.
민주공화당 백남억 후보는 3만 5200표 무소속 김윤하 후보 3만 2126표, 신민당 이기한 후보는 1만 5113표를 얻었다. 이외에도 민주통일당 임재영, 무소속 이재옥 후보도 선전했다.


▷제11대 총선 (1981년 4월 11일- 1985년 4월 10일)
김천, 금릉, 상주에서 2명 의원을 배출했다.
7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10대에 이어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정수 후보가 4만 9922표(28.2%), 민정당 정휘동 후보가 4만 6093표(26.1%)를 얻으면서 1,2위로 당선됐다. 민주공화당이 사라지고 민정당 시대가 열리는 때였다.
이외에도 민권당 정정문, 민주한국당 한봉수, 무소속 이재옥, 무소속 김종섭, 무소속 김인 후보가 나섰다.

▷제12대 총선 (1985년 4월 31일- 1988년 5월 29일)
김천, 금릉, 상주에서 2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3명의 후보가 나선 선거에서 상주출신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동서인 민정당 김상구 후보가 9만 6567표(49.3%), 3수에 도전한 신한민주당 이재옥 후보가 3만 3504표(17%)를 얻어 1,2위로 당선됐다. 무소속을 고집하면서 3선을 겨냥해온 박정수 후보는 3만 718표를 얻는데 그치면서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외에도 국민당 김한선 후보가 2만 3349표를 얻었으며, 민한당 이기한 후보도 선전했다.

▷제13대 총선( 1988년 5월 30일- 1992년 5월 29일)
김천, 금릉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동일 선거구에서 정원 1명을 유지해 오고 있다.

12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패배한 박정수 의원이 민정당 후보로 나서 5만 4067표( 63.9%)를 얻고 당선됐다. 민주당 박희동, 평민당 정정문, 공화당 조석환 후보도 뛰어들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제14대 총선 (1992년5월 30일- 1996년 5월 29일)
김천, 금릉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5명의 후보가 나섰다. 민정당에서 이름을 바꾼 민자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수 후보가 4만 3687표(53%)를 얻어 당선됐다.민주당 정정문, 신정당 박휘동, 무소속 문종철 후보도 나섰지만 차후를 기약해야 했다.

▷제15대 (1996년 5월30일- 2000년 5월29일)
6대부터 14대에 이르기까지 33년동안 백남억, 박정수 의원이 주도해온 시대를 종료시킨 선거였다. 그런만큼 김천 선거 역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김천시와 금릉군이 통합된 가운데 치러지는 첫 선거라는 의미까지 부여됐다.
또 법무부 장관 출신의 정해창 후보와 수사관 출신의 임인배 후보가 맞붙어 흥미를 더해 주기까지 했다.
결국 한나라당 임인배 후보가 3만 4576표( 45.2%)를 얻으면서 2만 9831표를 얻는데 그친 정해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외에도 국민회의 공부동, 민주당 박연옥, 자민련 김한선, 국민연합 조석환, 무소속 박영우, 여인섭, 이병무 후보가 가세했으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특히 모 후보는 296표를 얻어 역대 김천선거 사상 최소표를 얻은 기록을 남겼다.


▷제16대 총선 ( 2000년 5월 30일- 2004년 5월 29일)
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3명의 후보가 나섰다. 기상청 홍보관으로 널리 알려진 김동완 후보에게 관심이 쏠리기도 했으나 3위에 머물렀다.
한나라당 임인배 후보가 역대 최대 득표율인 4만 9544표(75.4%)를 얻으며 당선됐고, 민주당 박영우 후보 9천 274표, 자민련 김동완 후보는 6천 925표였다.

▷제17대 총선 (2004년 5월 30일- 2008년 5월 29일)
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3명의 후보가 나선 선거에서 한나라당 임인배 후보가 4만 1686표(62.2%), 무소속 임호영 후보가 1만 6584표를 얻었다. 열린 우리당 배태호 후보도 선전했다.

▷제18대 총선( 2008년 5월 30일- 2012년 5월 29일)
1명의원을 선출했다. 4선을 겨냥해온 임인배 의원이 낙천하면서 대신 이철우 후보가 한나라당 간판을 내세우고 나섰다. 이 선거 역시 3선 시장 출신의 박팔용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선거중판까지 박 후보가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투표함을 열면서 또 다른 이변을 연출했다. 한나라당 이철우 후보는 3만 5933표(53.3%), 무소속 박팔용 후보 2만 9820표였다.

▷제19대 총선(2012년 5월30일-2016년 5월29일)
1명의원을 선출했다. 19대에 이어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이 4만9909표(83.45%)를 얻으면서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평화당 배영애 후보는 9천884표(16.54%)를 얻는데 그쳤다.

▷제20대 총선(2016년 5월30일-2020년 5월29일)
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4만2340표(64.25%)를 얻으면서 3선에 당선됐다. 무소속 박판수 후보는 2만3549표(35.74%)를 얻었다.

▷2018년 재보궐 선거
이철우 현 도지사가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재보궐 선거 요인이 발생했다.
전국 13곳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12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김천이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후보를 당선시키면서 화제를 낳았다.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과 무소속 최대원 후보가 박빙양상으로 전개된 선거에서 송 의원은 493표차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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