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구미공단의 새벽 |
[경북정치신문=서울/ 손정우 기자] 최근 삼성전자 노태문 대표는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피지컬AI·휴머노이드 로봇 양산체계, 로봇 데이터 팩토리, AI 데이터센터 조성 등을 위해 구미에 19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포항시가 지난 6일(월), 휴머노이드 로봇 실증 거점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언뜻 보면 구미와 협력하여 자체적으로 로봇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훈훈한 상생협력처럼 보인다.
그러나 포항시 발표문에는 “구미는 핵심 부품과 제조 기반을, 포항은 연구개발과 실증을 담당한다"는 문장이 명시돼 있다. 경북도 역시 구미를 로봇 생산 및 핵심부품 공급망 거점으로, 포항을 연구개발과 실증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역할 분담을 공식화했다.
로봇 생산 거점 지위는 안정적. 그러나...
포항의 강점은 포스텍,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뉴로메카 같은 연구개발·실증 인프라이지, 부품 제조 기반이 아니다. 반면 구미는 이미 전자·전기 부품 제조업체가 밀집한 산업단지를 갖고 있다. 로봇을 실제로 '만드는' 역할은 이 제조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에 있다. 포항시 발표문을 다시 보면, 실증사업 목록이 이미 구체적이다.
AI 기반 자율예지보전, 고위험 작업용 모바일 자율로봇, 폐배터리 인간-로봇 협업 해체기술, 수중로봇, 안전로봇까지 다양한 실증 트랙을 축적해 왔고, 이를 발판 삼아 휴머노이드 실증으로 넘어가겠다는 그림을 선제적으로 그려놓았다.
투자 발표 이후 구미 정치권은 어떤 후속 조치를 하고 있는가
반면 구미 쪽에서는 아직 이에 대응할 만한 연구개발·실증 청사진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구미는 삼성의 로봇 공장을 유치한 도시에 머물고, 로봇 산업의 기술과 특허, 표준, 그리고 고급 인재는 모두 포항에 쌓이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
이것이 진짜 '빈깡통' 시나리오다.
삼성의 19조 원 투자가 구미에 들어와도, 그 안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의 핵심인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 등이 전부 포항으로 흘러간다면, 구미는 로봇 산업의 '몸통'은 갖되 '두뇌'는 갖지 못한 채 조립만 하는 하청기지로 남을 위험이 크다.
생산 거점이라는 타이틀은 지켰지만 ‘속 빈 강정’이 되는 셈이다.
19조 원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위기를 대하는 구미 정치권의 감각이다.
반도체 팹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산토끼'다. 반면 로봇 생산 거점은 이미 삼성의 19조 원 투자 발표로 손에 들어온 '집토끼'다. 그런데 지금 구미 정치권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아직 잡지도 못한 산토끼 쪽에만 쏠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토끼는 가만히 놔둔다고 마냥 안전한 것이 아니다.
포항이 이미 실증사업 로드맵까지 촘촘히 채워가며 로봇 산업의 두뇌 역할을 선점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구미 정치권은 삼성이 구미에 투자하기로 발표만 한 것을 최종 성과로 여기며 안주하고 있다.
이런 안일함으로 대응한다면, 로봇의 핵심 부가가치는 서서히 포항으로 흘러가고 구미에는 단순 조립 라인만 남을 것이다. 이미 확보한 것을 지키고 키우는 일에는 정작 정치적 에너지가 실리지 않는 이 비대칭이야말로, 지금 구미가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위험이다.
정치적 실속을 채워야 할 차례
산토끼와 집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은 필요하다. 그러나 반도체와 로봇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다가, 잡았던 로봇마저 실속을 놓치고 반도체도 확보하지 못하는 이중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구미 정치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투자가 결정된 로봇 산업을 실속 있게 지켜내는 일이다.
첫째, 휴머노이드 로봇 특화단지 지정을 서둘러 확정 짓도록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실무 협상력을 집중해야 한다. 지정이 늦어질수록 역할 분담의 구도는 언제든 재조정될 여지가 커진다.
둘째, 로봇 연구개발 기능을 구미 안으로 끌어오는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대학·연구소와 연계한 구미형 로봇 연구거점 신설, 삼성 투자와 연계한 기업부설연구소 유치 요구 등을 지금 당장 공론화하고 구체적인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반도체 팹 유치 논의에 쏟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이 두 가지 실행 과제로 즉시 재배분해야 한다.
구미가 ‘메인(Main)도시’가 되어야 한다
로봇 벨트 안에서 구미의 생산 거점 지위는 아직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지위가 진짜 구미의 자산이 되려면, 구미가 조립만 하는 ‘서브(Sub)도시’를 넘어 기술과 두뇌도 함께 쌓아가는 ‘메인(Main)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산토끼만 쫓다가 이미 잡은 집토끼의 살을 빼앗기는 것은, 지역 정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실책이다. 포항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구미도 늦기 전에 진짜 실속을 채워 넣을 청사진을 그려야 할 때다.
손정우 기자 gbpolitics
사진=경북정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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