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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총리 출신 대통령, 차기 대선 초유의 기록 남길까..
정치

총리 출신 대통령, 차기 대선 초유의 기록 남길까

서일주 기자 입력 2019/10/21 16:45 수정 2019.10.22 16:45


이낙연 현 총리, 황교안 전 총리 1,2위 시소게임
김종필,이회창, 이한동, 이수성 전 총리 본선 진출
이홍구, 박태준, 고건,한명숙, 이해찬, 정운찬 전총리 막판에 포기
총리 출신 대통령 전무, 차기대선 앞두고 전현직 총리에 관심 집중


과연 차기 대선에서는 국무총리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한국 정치사상 초유(初有)의 기록을 쓸 수 있을까.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이낙연 현 총리가 1,2위의 자리를 놓고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는 지금의 박빙양상이 지속된다면 가능성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하지만 과거로 시계추를 돌리면 ‘국무총리 출신=대통령’이라는 비례의 법칙이 준용된 사례는 없었다. 왜 국무총리라는 막강한 이력을 들이밀고도 대통령이라는 정상의 고지에 오를 수 없었던 것일까.

민심은 얻었으나 천운을 타고나지 못했던 탓일까.


◇ 역대 국무총리 출신 대선 잠룡들의 발자취

역대 대통령 선거에 명함을 내민 국무총리 출신 후보는 최규하(강원 원주)김종필(충남 부여),이회창(북한 서흥), 이한동(경기 포천), 이수성(경북 칠곡)등 5명이다.

또 국무총리 중 대권에 뜻을 둔 잠룡으로 본선 무대를 향해갔지만 사방팔방에서 몰아치는 내우외환으로 꿈을 접은 총리 출신은 이홍구, 박태준, 고건,한명숙, 이해찬, 정운찬 등 6명 이었다.

이처럼 본선에서 명함을 내민 5명(이수성 중도사퇴)의 역대 대선 후보와 유력한 잠룡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뒷심 부족으로 꿈을 접은 6명 등 11명을 포함해 대한민국 정치사에 총리의 이력을 남긴 인사는 현직인 이낙연 총리를 포함한 43명이다.

이범석을 시작으로 장면, 장택상, 백두진, 변영태 등은 1공화국 출신의 총리들이었다.
이어 제2공화국부터는 허정, 장면, 최두선, 장일권, 백두진, 김종필, 최규하, 신현확, 남덕우, 유창순, 김상협, 진의종, 노신영, 김정렬, 이현재, 김영훈, 노재봉, 정원식, 현승종, 황인성, 이회창, 이영덕, 이홍구, 고건, 박태준,이한동, 김석수, 고건, 이해찬, 한명숙, 한덕수, 한승주, 정운찬,김황식, 정홍원, 이한구, 황교안 등이 질곡과도 같은 한국 정치사를 써 내려갔다.

이들 45명 중 두 번에 걸쳐 직을 역임한 김종필, 고건의 중복 이력을 제외하면 현직을 포함한 국무총리는 43명이다. 결국 43명의 국무총리 중 11명, 25.5%에 이르는 인사들이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상을 겨냥한 셈이다.

◇대권을 겨냥했던 국무총리 출신

국무총리 출신으로 대통령이라는 명함을 새긴 이는 최규하 전 총리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쥔 대통령’은 아니었다. 1975년부터 국무총리를 맡은 그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자, 전두환 신군부가 급조한 통일주최 국민회의 간접선거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선거인수 2천560명 중 2천 549명이 투표한 결과 2천465명이 찬성(무효 84표, 기권11표)했을 만큼 당시 선거는 신군부가 집권을 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대통령 취임 8개월만에 신군부의 압력으로 사임을 하면서 대한민국 정치사에 오점을 남겼다.

국무총리 출신 중 사실상 대선 본선에 최초로 명함을 내민 이는 김종필이었다.그러나 그에겐 천운은 물론 민심도 함께하지 않았다.한때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없고 세상을 호령해 온 실세 중의 실세였던 그에게 8.06%득표율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당선자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의 27.04%에 이은 4위 결과 였다. 특히 김종필은 충남 1위, 충북에서 3위를 한 반면 타지역에서는 최하위를 면치 못했을 정도였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로 상징되는 3김시대가 남긴 치욕의 13대 대선은 김종필의 몰락과 국민적 요구였던 김대중, 김영삼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신군부 계열인 노태우 정부를 탄생시킨 치욕적인 역사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어진 15대,16대,17대 대선에서 총리 출신 이회창 후보는 인생 최대의 굴욕을 맛보아야 했다.
‘대쪽 총리’로 유명세를 탔던 그는 15대, 16대 대선을 앞둔 막바지 시점까지도 ‘당선 가능성 1위’자리를 고수하면서 국민여론을 선점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민심 99%, 천운1%’가 조화를 이뤘을 때 내려지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제15대 대선은 일찌감치 이해창 전 총리에게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는 듯 했다. 하지만 경선에 나섰던 이인재 전 의원이 결과에 불복해 출마하면서 19%의 표심을 잠식하자, 이 전 총리는 낙선이라는 된서리를 맞아야 했다.

김대중, 김영삼의 후보단일화로 노태우에게 대권을 뺐긴 13대에 이어 15대대선 역시 이회창 전 총리가 이인제를 끌어안지 못하면서 초래한 비극적 결과였다.

선거 결과 이회창에겐 뼈저린 아픔을 안겼다. 당시 대선에서 김종필 전 총리의 도움을 얻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1천32만6천275표(40.27%)를 득표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득표한 9백935만718표(38.74%)보다 불과 39만557표 차이에 불과한 박빙의 승부수였으니 말이다.

15대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16대 대선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이회창 후보에게 천운은 없었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로 힘을 얻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천 2백 14만277표(48.91%)를 얻으면서 당선된 반면 한나라당 이 후보는 1천144만3천297표(46.58%)를 얻는데 그쳤다. 이 또한 표차가 57만980표에 불과한 박빙의 승부수였다.

총리출신의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는 등록 막판에 후보직을 사퇴했다.

17대 대선에서는 2명의 전직 총리가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국민연합 이한동 후보는 0.30%, 7만 4천27표를 얻으면서 체면을 구겼다.특히 당시 선거에서는 15대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굴욕의 아픔을 제공한 이인재 전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악몽을 재현했다.

당시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48.67%를 얻으면서 여유있게 당선됐다. 이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26.14%,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3,01%, 민주당 이인재 후보 0.68%,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5.82%, 경제 공화당 허경영 후보는 0.40%를 얻었다.무소속으로 나선 이회창 후보는 15.07%를 얻는데 그쳤다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와 새천년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격돌한 18대 대선에서는 전직 국무총리들이 대선에 나서기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세 결집에 나섰다.
김영삼 정부시절 총리를 지낸 이수성, 정운찬,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총리를 지낸 고건 등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20대선을 향해 가는 유력 주자, 전현직 총리

황교안 전 총리와 이낙연 현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여타의 잠룡보다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는데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자고나면 바뀌는게 정치환경이다. 그만큼 변화무쌍(變化無雙)게 정치세계가 아니던가.
특히 유력한 잠룡으로 거론되는 이들 전현직 총리가 대권으로 가는 탄탄탄한 가도를 닦으려면 목전으로 다가온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야만 한다.

따라서 누가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인 총선상황을 유리하게 설계하고, 누가 얼마나 풍성한 결실을 거둘지에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내년 4월 총선을 대선 전초전으로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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