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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백수 일기 30/ 팬데믹과 그다음 세상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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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일기 30/ 팬데믹과 그다음 세상을 위한 제언

김영민 구미도시 재생센터 소장경북정치신문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21/04/30 10:53 수정 2021.11.27 17:57

김영민 칼럼 사진제공

[칼럼= 김영민 구미도시 재생센터 소장] 벌써 숨 가쁘게 달려온 일 년입니다. 조금 진정될 듯하다가 변이와 변종이 생기고 이런저런 모습으로 새로운 형태의 공포가 전 지구적으로 온통 집어삼키는 형국입니다. 아직 정확한 모양도 없이 못이 삐죽삐죽 박힌 덩어리가 우리를 공포의 늪으로 끌고 가기에 충분합니다. 심지어 인도에서는 하루에 수십만 명이 확진자로 나타나고 죽는 사람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병원시설이 도저히 박을 상황조차 불가하여 사체를 화장하기 위해 공공시설(축구장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전 지구인을 아프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런저런 이름의 백신이 나와서 어떤 나라는 이제 마스크를 벗고 일상생활에 접근하는 방식(이스라엘 등)을 취하지만 백신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가 구분되고 이러한 백신 양극화에 지구는 잠시도 그 끙끙거림을 멈추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세대의 키신저라는 별명을 가진 파리드 자카리아가 쓴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권기대 역, 민음사, 2021.4)이라는 이름의 책이 나왔습니다. 부제로 붙인 ‘개인의 운명과 세상을 방향을 결정지을 10가지 제언’은 이미 2017년 CNN을 통해 치명적인 세계보건 위기가 올 것을 예견한 다음 가속화된 역사의 흐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지, 다음 단계의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열 가지의 교훈을 우리의 눈으로 되새기는 것이 지금을 사는 현명한 방법의 하나라 믿습니다. 책을 시작하면서 그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미래는 결코 입을 열지 않으며 닥쳐올 그 심오함에 대해서 바보처럼 징후를 보내 한 음절이라도 드러내는 일이 없으리라’로 그러면서도 ‘그러나 소식이 무르익어 미처 준비도 못 하게 앞선 행함으로 그 심오함이 보일 땐 달아나라, 혹은 대처하라’(Ralph W. Franklin 편 The Poems of Emily Dickinson: 1999, 재인용)라고. 그의 열 가지 교훈을 이렇게 정리하면서 크게 두 가지로 그의 생각을 우리의 눈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처음은 인간과 도시에 대한 그의 과제입니다. 그는 지금을 ‘안전띠를 단단히 매어야 할 때로 규정’하고 이 비상상태는 ‘국제관계에서 결국 나라들이 각자도생, 즉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말로써 국제화, 세계화 혹은 선린 우호라는 미명의 허울들이 생존 앞에 형편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적합니다. 인은 놀라울 정도의 발전속도를 진행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엔진도 뜨거워지고 부품들이 가열하여 불이 나기도 하고 충돌사고도 있는 상황에서 차체를 손보고 에어백을 장착하며 보험도 다시 드는 그러면서 무엇보다 안전띠를 간단히 매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신종 바이러스의 결과를 과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좀 엉뚱한 질문으로 이제 삶은 디지털이라는 제목으로 과제를 제시합니다. 그 말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은 ’기술혁명’을 가져다주고 인공지능과 생체공학 혁명을 둘러싼 여러 규칙을 조심스레 살피지 않으면 이제는 인간성마저 잃을 수 있음을 강하게 주의할 것을 지적합니다. 

 

이런 사태는 우리에게 절실한 용맹성, 충성심, 관대함, 믿음, 사랑과 같은 가장 인간적인 것을 보듬지 않으면 팬데믹 이후의 과제에 대한 다음의 방식은 제로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서도 여섯 번째 우리는 사회적 동물임을 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았음을 강조합니다.
인간이 2만여 년 전 농업사회 이후 군집 생활을 시작한 후 도시는 거대한 성으로 만들어지고 이러한 도시화는 멈출 줄 모르고 팽창에 팽창을 거듭해 오고 있었습니다. 1950년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전세계인구의 1/3도 되지 않았지만 2050년에 이르면 2/3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리라 추정합니다. 

 

천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는 도시가 늘어나면서 우리에게 준 교훈의 하나는 도시가 유난히도 이 질병에는 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내용은 중국 본토에서 처음 발병한 이후 그 내용에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도시의 모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2020년 1월 ‘안느 이달고’ 파리시장은 파리를 ‘15분 도시’로 바꾸겠다는 하여 당선되었습니다. 기존의 도시계획과 전혀 다른 어디든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이내 도착할 수 있는 공원, 학교, 카페, 병원, 헬스클럽에 도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100년 묵은 도시계획의 정설을 거스르는 계획을 말입니다. 인간은 도시를 창조하고 도시는 인간을 만듭니다. 도시에서의 삶을 합리화하는 모습은 매우 다양합니다. 봉쇄나 경쟁보다는 참여하고 협동하는 형태에 가장 가까운 도시로 거듭나는 것, 사회적 동물이라는 통찰에 대해 그 정반대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팬데믹에 우리의 사회성은 과연 무엇인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감지하는 모습이고 많은 곳에서 수없이 회자하는 말이지만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집니다. 팬데믹이 만사를 평등하게 만들어 줄까요? 멕시코 예술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가 한 말 ‘종말에는 백인이건 흑인이건 부자든 가난뱅이든 모두 해골이 되어 끝난다’로 모두 같이 귀결될까요? 1993년에서 2008년 사이 세계은행이 평가한 바 92개국 중 42개국의 불평등이 증가했고 1928년 이후 지니계수가 최고의 수준에 이르는 등 부의 불평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극빈층 인구는 1990년 19억 명이란 통계가 이를 잘 대변해 줍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가장 현저한 불평등은 ‘건강한 사람과 아픈사람’들 사이에 일어나고 이를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말한 것처럼 “우물왕국”과 “환자왕국”사이의 경계선이라 불렀습니다. 평등의 본질이 무너지고 이제 불평등은 피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 경제적 과제에 대한 해결방식의 제안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제 사례를 통하여 국가(혹은 지도자)의 허구성을 통해서 질 좋은 나라에 대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숙고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특히 아시아의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문화적 뿌리를 둔 ‘엘리트 관료’의 만다린 전통(다소 독재적인 틀은 있지만)이 열려있고 투명한 상태의 식민지를 경험한 싱가포르처럼 기강이 잡혀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며 국가의 크기가 아니라 지도자의 모습, 문화전통 등 질 좋은 지도력과 전통문화가 이 문제에 대한 대처 방식에 ‘효과적’임을 보여주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 정부의 크기 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비토크라시’(프란시스 후쿠야마. 상대방의 정책이나 주장을 무조건 거부하는 정치형태)에 대해 전 세계 질 좋은 나라에 대하여 배워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아마 최근 우리나라 정치형태도 꼭 같은 모습이지요만, 백신에 대한 의심을 구태여 만들어 불안하게 하려는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바로 당의 정체성이라도 되는 양 떠벌리는 것 또한 이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지요)

 
이제 자유주의 자본주의 시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극도의 불평등은 유료사회(pay-to-play-society)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규제를 목표에 맞추어 적절하게 조절하기만 한다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과 관료주의적인 행정절차를 최소화하고 최상의 교육이라는 목표 아래 정부의 계획을 재편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유주의 경제시장의 모습이 펜데믹 이후의 정치 경제 과제에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네 번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실책을 빗대어 한 말이겠지만 ’(정책 책임자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 동시에 ’전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소통의 원리가 다음에 반드시 해야 할 숙제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020년 3월 아르헨티나의 소아과의사 릴라아나 델 카르멘 루이스는 코로나 19로 세상을 떴습니다. 물론 기저질환이 있었고 암을 이겨낸 적도 있었지만 수많은 죽음 중 이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바로 이 병의 처음 발생지로 추측되는 중국 우한과 지구의 정반대 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가 목적이었던 세계화가 전염병 발생 한 달이 겨우 넘어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지요. 이제 팬데믹 이후의 세계화를 보는 것이 확실해진 실제입니다. ‘경제적인 목적으로 세계가 빠르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브라이스, 1902)라는 1세기 이전의 설명은 이제 죽음의 공포 앞에 빠르게 하나 되고 있고 그로 인한 분쟁과 차별은 더욱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추구할 수 있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화는 상호이전 혹은 대가가 큰 고통의 분배 등 새로운 경쟁이나 자익 추구의 세계화가 아닌 비생산적이나마 서로에게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나눔의 세계화가 다음에 꼭 필요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때론 최고의 현실주의자가 이상주의자다’라는 말로 다음 세상을 향한 과제에 답을 내립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더 이상 국제질서를 회복하거나 압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국제적인 연합(중국의 아시아 연합은행, 라틴아메리카의 중국의 영향력 확산,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제연합, 유럽의 경제연합 등 다자 시스템) 등은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국제적인 위기와 위험에 대해 집단적인 행동을 요청하는 현실주의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기후문제에 있어서 누구나 닥쳐올 위험에 대해 이름이나 신조, 블록과 관계없는 신세계 질서화가 이제는 팬데믹 이후의 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1980년 천연두가 공식적으로 박멸되었을 때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에레즈 마넬라(Erez Manela)’가 한 말을 다시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당시 냉전의 역사 속에서도 “전쟁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초강대국의 협력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을 통해서 이 시기 지금 지구 전체가 앓고 있는 문제에 해답을 우리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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