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낫다!’ 얼핏 좋은 말 같지만 정치학 원론 수준에서 살펴보면 이는 매우 위험한 궤변이요, 심각한 망발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 가운데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으로서 예로부터 전쟁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는 말은 일면 진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질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고 한다면 이는 국가 주권을 포기한 매국적인 막말이 될 수 있다. 구한말 일본의 군사력에 항복 선언한 매국 행위를 한 자들이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것이며, 공산화 적화 통일을 위하여 남침한 6.25 한국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희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전쟁을 통하여 이기는 것보다 더럽지만 참고 견딘 평화가 더 낫다’고 한다면 자유 대한민국의 주권을 핵폭탄으로 위협하는 1인 공산 독재 정권에 넘기는 일은 너무도 쉬워진다.
자유와 평화는 소중한 것이며, 국민들이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킬만한 가치 있는 일임을 망각한 경솔한 표현을 삼가야 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관에 쓰여 있는 명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공산 사회주의 체제의 치열한 경쟁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처참하게 패배하였고 역사가 이를 증명하였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자유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껴왔으며, 이를 지키기 위하여 전쟁도 불사하였다.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즉, ‘자유’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으며, 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시회주의 독재 체제에 비하여 월등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체제임을 경험해왔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이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담히 맞서 싸울 각오를 다지는 일을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특히 개별 국민이 아니라 국가적 수준에서는 국민의 영토와 생명과 재산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된다.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 자유를 파괴하려는 세력을 추종하거나 동조하는 자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자유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평화는 목표이고 전쟁은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전쟁이 두려워 질 나쁜 평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가장 소중한 가치, 즉, 자유와 행복을 포기한 선언일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여당은 얼핏 좋은 말 같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매우 나쁜 말들을 양산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 ‘소득 주도 성장’ ‘최저 임금 향상’ 얼핏 좋은 정책 같지만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실패한 나라들이 걸어왔던 말의 잔치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한국 사회에는 거짓과 궤변이 진실과 공의로 위장되어 정치, 문화, 검찰, 교육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물리, 화학, 생명, 지구과학 등 자연현상은 확실성의 원리(principle of certainty)를 추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현상을 연구할 때는 확률성의 원리(principle of probability)를 추구할 뿐 그 속에서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탐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unity)하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가운데 극좌 극우의 성향을 지닌 소수파 개인과 다수의 합리적인 중용 집단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 또는 지도자의 이름으로 균형된 시각을 버리고 극소수파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이를 정책으로 수립 시행한다면 역사 발전에 역행할 뿐 아니라 정반합의 불행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국민 주권, 국민의 생명과 자유, 인권과 평화 등과 같은 매우 본질적인 정책 문제에 대하여 불행하게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적 검토 없이 권위주의적 또는 감상주의적 발상으로 뜯어 고치는 위험 수위의 궤변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