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부분 구미시민은 캐캐묵은 이념 논쟁, 정쟁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어렵고 힘들다. 오로지 정부와 정치권이 구미국가 공단의 아궁이에 불꽃을 지피고, 따스한 온기가 사랑방까지 흘러들길 바랄 뿐이다.
2012년 기준, 수출 344억불을 달성했던 구미공단은 2018년에는 258억불로 주저앉았다. 가동률 역시 2012년 85%에서 2018년에는 63.9%로 추락했다. 이러한 구미공단의 쇄락은 구미시민으로 하여금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기존의 리더들, 또 이들을 배출시킨 보수성격의 기존정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작용했다. 결국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구미시민들은 보수 후보에게 보여 온 ‘묻지마 투표’의 형태를 진보정당 후보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성격은 하루 아침에 뒤바뀔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구미시민들이 보수정치를 지향하는 자유한국당을 버리고, 진보를 표방하는 더불어민주당에게 ‘묻지마 투표 행위’를 한 것은 쌀독의 바닥을 긁어야 할 만큼 날로 궁핍해지는 살림살이의 빈곤 극복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시민들의 인식 속에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과 정치 논리는 안중에도 없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만이 살아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둥지를 튼 민주당은 마치 시민들의 성향이 하루아침에 진보로 뒤바뀌었다는 착각과 환상 속에서 구미를 이념 논쟁, 보수와 진보의 대결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어려운 구미 상황을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한국당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들 또한 이념과 정치적 논쟁을 통해 구미시민들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 선거 이후 구미에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교두보를 뺏겨선 안된다는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처신은 그동안 어땠는가.
지난 해 8월 29일,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구미시청에서 첫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구미는 민주당이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유일하게 기초단체장을 배출한 곳이다. TK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라고 강조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가까워오는데도 불구하고, 지원은 전무했고, 오히려 구미공단의 가동률과 청년 실업률을 폭락시키면서 구미서민 경제를 더 망가뜨려 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만 해도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던 대부분 시민들은 ‘민주당이나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방송 화면’이 나오면 등을 돌릴 정도이고, 움직이는 여론창구인 택시 기사들 역시 격하게 삿대질을 해대는 판국이다. 기대감이 실망감을 넘어 배신으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자유한국당 역시 자유롭지가 않다. 그 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 새누리당 소속의 리더들이 구미를 이끌던 당시, 구미는 미래의 성장 동력이면서 발판으로의 역할이 기대됐던 혁신도시, 신도청, 영남물류센터, 심지어는 KTX까지 내주었다. 엘지와 삼성이 수도권과 해외로 유출되었지만 뒷짐이었다. 오히려 수백억원대의 혈세가 죽어나간 원예공사 등 허울뿐인 대형프로젝트를 통해 구미시민의 삶을 옥죄이는 요인만 발생시켰다.역사 심판의 대상들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13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선산읍 구미보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했다.심지어 이날 방문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할 리통장들에게 참가 권유문자까지 보내면서 구미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특히 최근 모 언론은 문제의 문자를 작성한 최초의 발원지가 구미지역 모 국회의원실이라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구미공단 회생에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여야 정당 지도부가 구미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초상난 집에서 진치를 하겠다는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따라서 여야 정치권이 앞 다투어 구미를 찾는 행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하다. 구미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해 온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 구미를 방문해 숱하게 약속했던 발언들이 구체화되었다면 구미는 ‘전국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공단’이 되었어야 했다.
이런 판국에 민주당 소속 장세용 시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구미시민을 진보와 보수라는 경계를 그어놓고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새마을과 폐지가 그렇고, 하지 말았어도 될 김재규에 대한 호칭이 그렇다. 시민화합보다 갈등을 부추키고 있다. 모든 시민의 시장이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적 감정과 사적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보수이지만 진보시장을 선택한 시민들도 무시하겠다는 발상인가.시민을 배신하는 정치적 술수라는 점,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독재정권 시절 온갖 수난을 겪은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직후 당시 박근혜 전대통령과 만나 동서화합을 약속했다. 수난을 겪은 만큼 되갚는 보복의 정치도 없었다. 그래서 소중한 역사의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구미시는 딴판이다. 마치 80년대를 보는 모습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온 시민이 힘을 도모해야 할 공간인 구미시청 광장에는 보수와 진보단체들이 ‘현수막 싸움’을 하고 있다. 의회에서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나 새마을 사업 얘기만 나오면 각을 세우기 일쑤다,
그들이 살아온 길을 따져묻고 싶다. 과연 그들이 반민주 시대 상황 속에서 얼마나 몸을 불살랐고, 보릿고개의 가난 속에서 얼마나 자신의 삶을 분골쇄신했는지를 묻고 싶다.
운동권에 잠시 몸담았다는 이유로 선민의식을 갖고, 처절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아오지도 않았으면서도 산업화의 일꾼이라는 또 다른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그들이 한심하다.
지난 6일 현충일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간만에 옳은 발언을 했다.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고 전제한 그는 “우리에게는 사람이나 생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며 대립하던 이념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라고 기념식 전문을 읽어나갔다.
암울하고 어두운 경제 터널 속에 갇힌 구미시민들은 ‘구미경제 회생 앞에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결은 청산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라고 외치고 있다.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구미를 수단시하는 여야 중앙정치권, 진보와 보수의 가치이념도 제대로 모르면서 군중의 논리에 빠져든 구미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구미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시민적 요구를 뒤로한 채 중앙이나 지방정치권이 보수와 진보라는 대결논리를 지속해 나간다면 구미시민들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시민들은 구미경제 재건을 위해 진보와 보수의 논리는 캐캐묵은 유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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