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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포장마차 골목이 있었고
담배 간판이 유난히 돋보이던
허스름한 슈퍼를 돌아들면
추수를 끝낸 기다란 이랑에는
햐얀 비닐이 너풀거리고 있었다
그 이웃한 곳에 아름드리 멀구슬 나무가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떠받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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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벤치에 앉은 소녀와 소년은
아련히 다가오는 한라산을 올려다보면서
그 너머 세상을 그리워하곤 했다
세월은 세상을 바꿔놓는 것이었다.
소년과 소녀가 장년이 된 겨울날 찾은 고향
우리는 포장마차 골목이 있던 자리에
높게 들어선 빌딩 앞에서 걸움을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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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앉아 내일을 논하던 포장마차는
어떻게 되었고, 폐비닐이 너풀거리던 이랑이며
아름드리 멀구슬 나무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
빌라와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로에 오랫동안 걸음을 멈춰 세우고
길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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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포장마차 골목이
있던 곳이 아닌가요”
“모르겠습니다 ”
“이곳에 슈퍼가 있었고
저 곳에 아름드리 멀구슬 나무가
있던 곳이 아닌가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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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거리에 과거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이들은 없는 것일까
살길을 내느라고 앞만보며
달려온 세월이었다
쓸쓸한 퇴근길에는 가끔씩 그려보기도 하던
고향길이었다
동구 밖에 오랫동안 서서
두손을 내젖던 노모가
뉘엿뉘엿 기우는 먼 노을가에
아련히 떠오르던 그 풍경도
날이 밝으면 마음을 떠나곤 했다.
살길을 내느라고 앞만보고
달려온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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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고향에 왔으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그 길을 물어도 아는 이가 없다
타지에서 살아온지 수십년
나 역시
그 곳에서 내 길을 닦으려고
그들이 내 놓은 고향길을
얼마나 지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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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김경홍/1994년 신춘문예
월간 신인상으로 시,소설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