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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시와삶>고향, 길을 물어도 아는 이가 없다..
문화

시와삶>고향, 길을 물어도 아는 이가 없다

경북정치신문 기자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19/07/03 16:44 수정 2019.07.03 16:44


이 곳에 포장마차 골목이 있었고
담배 간판이 유난히 돋보이던
허스름한 슈퍼를 돌아들면
추수를 끝낸 기다란 이랑에는
햐얀 비닐이 너풀거리고 있었다
그 이웃한 곳에 아름드리 멀구슬 나무가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떠받들곤 했다

그 벤치에 앉은 소녀와 소년은
아련히 다가오는 한라산을 올려다보면서
그 너머 세상을 그리워하곤 했다

세월은 세상을 바꿔놓는 것이었다.
소년과 소녀가 장년이 된 겨울날 찾은 고향
우리는 포장마차 골목이 있던 자리에
높게 들어선 빌딩 앞에서 걸움을 멈춰 세웠다

마주앉아 내일을 논하던 포장마차는
어떻게 되었고, 폐비닐이 너풀거리던 이랑이며
아름드리 멀구슬 나무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

빌라와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로에 오랫동안 걸음을 멈춰 세우고
길을 물었다

“이곳이 포장마차 골목이
있던 곳이 아닌가요”
“모르겠습니다 ”
“이곳에 슈퍼가 있었고
저 곳에 아름드리 멀구슬 나무가
있던 곳이 아닌가요“
”모르겠습니다”

아, 이 거리에 과거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이들은 없는 것일까

살길을 내느라고 앞만보며
달려온 세월이었다
쓸쓸한 퇴근길에는 가끔씩 그려보기도 하던
고향길이었다
동구 밖에 오랫동안 서서
두손을 내젖던 노모가
뉘엿뉘엿 기우는 먼 노을가에
아련히 떠오르던 그 풍경도
날이 밝으면 마음을 떠나곤 했다.
살길을 내느라고 앞만보고
달려온 세월

기억을 더듬어 고향에 왔으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그 길을 물어도 아는 이가 없다


타지에서 살아온지 수십년
나 역시
그 곳에서 내 길을 닦으려고
그들이 내 놓은 고향길을
얼마나 지웠던 것일까

<발행인 김경홍/1994년 신춘문예
월간 신인상으로 시,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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