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경북정치신문

시사칼럼>‘박정희 정신’과 사농공상 타파(7)..
오피니언

시사칼럼>‘박정희 정신’과 사농공상 타파(7)

경북정치신문 기자 press@mgbpolitics.com 입력 2019/07/10 15:48 수정 2019.07.10 03:48
자하문연구소장 우 종 철

- “각하, 수출 1억 불을 달성했습니다.”-  “정말이오? 1억 불, 1억 불을 달성했단 말이지…. 1억 불, 1억 불…. 정말 수고했소. 상공부 직원들에게 수고했다고 전해 주시오.”김정겸 당시 상공부 차관은 “박 대통령은 감격에 겨워 ‘1억 불, 1억 불’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고 회고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은 수출이며,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1964년 11월 30일에 연간 수출액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를 기념하여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지정했고, 2012년부터는 무역 1조 달러 돌파 달성일인 12월 5일로 날짜를 변경해 ‘무역의 날’ 행사를 치르고 있다. 2018년에는 2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달성과 사상 최초 수출 6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역대 미국, 독일, 중국, 네덜란드, 프랑스,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7번째로 6000억 달러를 달성한 것으로 우리 제품의 품질과 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선진국 수준에 다가섰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개월 전인 1948년 2월, 무역선 ‘앵도호’가 홍콩과 마카오에 건어물과 한천을 내다 판 이후 70년 만에 첫 해에 1900만 달러이던 수출액이 무려 3만 1600배로 불어났으니 실로 격세지감이다.
수출 한국의 오늘이 있게 한 인물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다. 조선왕조는 본질적으로 농경사회와 유교를 바탕으로 통치되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 계급은 공업과 상업의 발전을 차단하였다.
박정희는 공무원 우위의 시대인 ‘사농공상’의 전통적 가치관을 ‘상공농사(商工農士)’로 바꾸었다. 그는 ‘수출 제일주의’를 내세워 “수출하는 게 곧 애국하는 것”이고,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무서운 집념을 보였다.
박정희의 ‘수출입국(輸出立國)’ 기저에는 실학정신과 실용주의가 오롯이 깃들어 있다. 조선조 500년 동안 가장 천시 받았던 상(商)을 제일 앞에 이끌어낸 것은 농경사회에 잠자고 있는 가치관의 재정립을 의미한다. 이것은 진정한 혁명이었다.

대한민국은 수출 1억 달러를 시작으로 1971년 10억 달러, 1977년 100억 달러, 1995년 1000억 달러 고지를 차례로 넘었다. 10억 달러 달성에는 한 해 1억 달러 이상 수출된 가발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100억 달러 돌파에는 종합상사들이 중심에 섰다. 이어 수출 주종목이 중화학 제품으로 바뀌면서 수출액은 해마다 목표 이상을 거두게 되었다. ‘하면 된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자’는 박정희정신에 대한 국민의 호응은 대단했다. 농업용으로만 사용되던 국토가 산업사회에 맞게 전환되었다. 구로공단을 시발로 익산공단, 마산수출자유지역, 구미공단, 창원기계공단과 반월(안산)공단 등 전국이 공업단지로 변해 60∼70년대 한국 산업을 이끌었다. 근로자들은 수출의 첨병이 되었으며 박정희는 ‘수출총사령관’이었다.

이처럼 인구 27위, 국토면적 107위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세계 6위의 수출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근저에는 ‘박정희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정신으로 무장한 국민들이 공장에서, 항만부두에서, 해외시장에서 밤낮없이 흘린 땀과 눈물이 오늘의 성취에 밑거름이 되었다.
1964년에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한 나라는 한국과 과테말라 등 12개국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진국 진입에 실패했다. 이것은 국가지도자의 미래지향적인 리더십과 기업인들의 창의와 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은 익산에 보석가공단지를 만들게 하였다. 외국의 보석 원석(原石)을 수입하여 가공 후 수출하여 외화벌이를 하자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벨기에의 작은 도시 앙베르(Anvers)는 작은 박스 하나에 다이아몬드를 넣어 1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서거 이후 익산의 보석가공단지는 유야무야되어 지금까지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이후 아시아에서는 태국이 보석의 집산과 유통의 메카가 되었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다. 고대 일본인들이 신라를 가리켜 “눈부신 금은(金銀)의 나라”라고 칭송했다. 현재 우리나라 보석시장은 20조~40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를 양성화하면 국가 세수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문직 일자리 창출의 요람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의 보석 디자인 및 세공 솜씨는 세계적인데 이를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한류의 한 지류로 새로운 패션 창출의 하나로 보석가공 산업을 발전시키면 어떨까.

저작권자 © 경북정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