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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구미공단 5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기획·연재

구미공단 5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김경홍 기자 입력 2019/10/15 20:05 수정 2020.01.30 18:42

↑↑ 1공단 야경

공단 50년 세월은 구미의 소중한 자산
4차산업 혁명 선제적 대응, 구미 미래 부흥 견인

역사 속에는 미래로 길을 내는 추동력이 있다. ‘공단 50주년’ 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구미로서는 대단하고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 속에 미래 50년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열쇠가 있고, 미래 50년을 향해 내달리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 참화가 불러들인 깊은 상처와 극도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1969년 구미1공단을 착공했고, 그로부터 4년 후인 1973년 조성된 320만평에는 187개의 기업이 입주했다.
이 기업들이 가동에 들어가면서 허허벌판은 이 나라를 먹여살리는 곡창으로 탈바꿈했고, 세상은 구미공단을 낙동강의 기적을 이룬 산업화의 심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구미공단은 2009년 전국 수출의 8%인 289억불, 무역흑자는 무려 전국 대비 45.2%인 182억불을 마크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50주년을 맞은 구미공단은 찬란했던 옛 명성을 잃고 있다. 대기업 의존 일변도의 산업구조에 안주해 온 결과 그들의 탈 구미화는 독자적인 생존력을 보유하지 못한 중소기업을 벼랑끝으로 내몰았고, 그 여파는 지역경제로 급속하게 파급됐다.
특히 급변하는 산업 페러다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데다 내륙공단 특성상 생명줄인 KTX 유치등을 통한 접근성 강화는 물론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미온적인 대응 결과는 구미공단에 설상가상의 치명타를 안겼다.

“지도자와 주민이 지역연고에만 안주하려고 하지 말고, 미래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늘 스스로 찾도록 해야 한다”
구미공단 건설을 가시권 안에 들여놓은 1967년부터 198년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구미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늘 이러한 주문을 했다. 지금의 구미공단 현실을 미리 예감했던 것일까.

역사는 그 골간골간에 기록해 놓은 내용이 좋고 나쁨을 떠나 미래로 나가는 나침반을 제시해 준다. 공단 50주년의 세월 동안 들여다보면 그 곳에 답이 있다. 옳은 것은 계승해야 하고, 그릇된 것은 반면교사의 재료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미래로 가는 길이 열린다.
↑↑ 조성 중인 5공단

◇숨가쁘게 흘러간 구미공단 50년 세월

1973년 10월 조성된 구미1공단에는 187개의 기업이 입주해 가동에 들어갔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업종별로는 전자 60%, 섬유 30%, 기타가 10%였다. 전자부문은 아날로그 흑백 TV 생산을 위한 금성사, 금성통신, 금성전선, 한도공업, 금성정밀, 한국전자, 대한전선,천일전자였고, 7개의 일본 기업도 입주했다.


섬유 분야는 (주)코오롱, 윤성방직,동국방직, 동국무역, 한국 합섬, 이화섬유, 제일합섬, 제일모직, 김감 단지, 코오롱 단지, 동국단지였고, 기타는 한국농약, 흥명공업, 아리아 악기, 서통, 가나공사, 삼영화학, 정화 금속과 중소하청기업 등이었다.

이들 기업이 가동에 들어가면서 전국 팔도의 청년들은 희망을 안고 밀물 듯이 밀려들었다. 열정은 대단했다. 생산성 및 품질 향상에 앞장선 이들은 수출 납기를 맞추기 위해 12시간, 2교대 근무는 물론 24시간 철야 근무와 계속 근무를 통해 기업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공단이 이처럼 발전을 하는데는 당시의 기업인과 근로자의 눈물겨운 피와 땀이 근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출발을 알린 구미1공단은 2,3,4,5공단을 연이어 확대 재생산하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1980년 3월 한국전자통신 인수를 계기로 구미와 인연을 맺은 삼성전자는 1980년 11월1일 구미1공장을 준공한데 에 이어 1983년 6월 팩스 제품을 생산하면서 구미공단에 삼성시대를 개막했다.

이어 1995년 9월에는 엘지디스플레이 구미LCD공장이 완공되면서 명실상부한 엘지 시대를 열었다.또 1999년 10월에는 도레이새한으로 출범해 2010년 5월 사명을 변경한 도레이 첨단소재가 둥지를 틀면서 신성장 동력산업인 탄소클러스터 시대의 개막을 예고했고, 이러한 요인들은 결국 구미공단을 최대의 중흥기로 견인했다.

이처럼 70년대 전기전자, 섬유로 시작한 구미공단은 80-90년대의 반도체, 백색가전,2000년대 IT•모바일, 2010년 이후에는 휴대폰•디스플레이•신재생에너지와 태양광,2차 전지분야 시대로 전환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대기업의 탈 구미화로 그들에게 의존해 온 중소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여파는 또 지역경제를 강타냈다.
급속도로 변하는 산업페러다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특히 대기업이 늘 구미를 먹여살릴 것이라는 안이한 발상은 KTX 유치 실패,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미온적인 대응으로 나타나면서 낙동강의 기적을 이룬 한때의 구미공단은 ‘쇄락하는 공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하지만 구미공단이 50년 세월 동안 잉태한 자산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신성장 동력산업을 접목할 경우 구미공단의 앞날은 흐림이 아닌 꽤청이다.


◇새로운 50년, 번영의 역사 쓰자

구미상공회의소는 15일 4/4분기 구미공단 기업전망이 어둡다는 전망을 하면서도 “구미형일자리’인 엘지화학의 투자 MOU가 체결되었고, 이어 산업부 공모사업으로 구미산단이 ‘스마트 산단’으로 선정되는 등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산학연관은 더욱 긴밀히 협력해 시너지를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은 구미공단은 모바일 디스플레이 산업에 편중돼 있던 업종 구조를 탄소소재, 친환경 자동차부품 등 차세대 전략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이들이 바로 구미 미래를 먹여살릴 신성장 동력이다.

특히 스마트 산단 선정으로 구미공단에 소재하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스마트 산단은 데이터와 자원의 연결 및 공유를 통해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미래신산업 창출,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2의, 제3의 구미형 일자리가 확산되도록 하는 노력도 구미 미래 먹거리 마련 차원에서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신성장 동력 산업이 탄력을 받고 중소기업들이 독자생존력을 키워 강소 중소기업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시키기 위해서는 관•학•연은 물론 지역 정치권과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 구미공단의 미래 50년을 꾸려나갈 주역으로 성장시키는데 모든 역량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시민적 여론이다.

특히 미래 산업은 치열한 기술 경쟁력을 예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급기술 인력 확보는 생명선과 같다. 교통접근성 및 교육 정주여건 미흡을 이유로 고급기술 개발인력이 구미를 기피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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