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경북정치신문

시사칼럼> 백수 일기 2- 결국은 돈이었습니다 ..
오피니언

시사칼럼> 백수 일기 2- 결국은 돈이었습니다

김경홍 기자 입력 2020/11/05 15:36 수정 2020.11.05 15:36

↑↑ 김영민 구미, 대구 YMCA 전 사무총장/ 사진 = 필자 제공


[칼럼= 구미, 대구 YMCA 전 사무총장]  며칠 전 국내 유수 일간지에서 여론을 주도하시는 분의 글에서 의대생 문제, 의사 파업에 연이은 의료 대란에 대해 지방의 의사 부족이나 기피 등 문제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이면서 신경 인류학자인 박사님이 요즈음 가장 큰 골칫거리의 하나인 된 의사들의 증원에 대한 집단진료 거부 사태, 의대생 의사고시 포기 등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의 건강에 대해 상심하는 중에 그 해결책이라고 보여주는 글입니다. 정부에서 말하는 공공의사의 양성을 위한 의대생의 증원으로는 지금 의사들의 대도시 쏠림현상, 소위 돈이 되는 과에 집중하는 의사들의 모습, 그리하여 전국에 의사가 한 명도 없는 시골이 늘어나는 현실에 의대생 충원으로는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막기에는 불가하다고 은근히 비추면서.

내용은 이렇습니다. 실제로 ‘의사는 이민자가 많은 직업이다. 미국엔 2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의사가 활동한다. 영국 의사 중 5만 명 이상이 외국에서 건너왔다.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나라에서 왔다. 반대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고 하면서 이들을 ‘히포크라테스 정신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생활 내지는 의사의 직업 자체가 그렇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1970년대 거의 4000여 명에 달하는 의사들이 미국으로 이민했음을 숫자를 들어 설명합니다. 동시에 ‘1980년대로 들어가면서 크게 줄었는데 그 이유가 한국도 좀 살 만해진 것이다’라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의사가 절실히 필요한 후진국일수록, 도리어 의대생은 필사적으로 의사가 넘쳐나는 미국과 유럽으로 향한다. 요즘 젊은 의사는 지방 근무를 꺼린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부족이라고 책할 수 없다고 글을 전개합니다. 그래서 내놓은 비책이 ‘의사들에게는 고수익이 보장’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합니다. (경향신문, 2020.10.13.일자) 민주사회라면서 의사의 계급화를 구체적으로 인정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2011년 인공지능 왓슨은 8,500만 개 이상의 의료기관이 축적한 의료 정보, 1억 명 이상의 환자 정보, 2억 명 이상의 생체 정보 등으로 최고 권위자들로 구성된 암 전문가의 진단 정확도 80%를 100%로 만들면서도 인간보다 1만 배 빠른 영상 판독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의 염려를 현실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가천길 병원에서는 암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인간 의사와 인공지능 의사가 서로 다른 처방을 내린다면 누구를 따를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100명 모두 인공지능 의사의 그것’을 따르겠다고 대답했답니다. 모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사가 필요 없는 시대, 인공지능으로 대신할 수 있는 의사의 자리가 점점 더 커가는 사회에서 의사의 수를 매년 확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말하는 사람(정부안), 이를 의사면허증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막아내겠다(의사협회, 전문의, 심지어 의대생들)고 싸우는 모습에서 그들이 내일의 세계에 대한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의 발달을 멈출 수 없고 이제는 공장에서 단순 작업을 거의 로봇이 대신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의사는 얼마나 될까요?

여기서 의사의 의학적 양심이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결국 자본주의, 더군다나 전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보수적인 성향이 유독 강한 의사들에게 의사의 양심이 무엇인지를 묻게 됩니다. 마틴 반 크레벨트는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 과잉과 양심 부재의 시대》(김희상 역, 니케북스, 2020,1 0)에서 데이비드 흄(18세기 철학자)의 ‘양심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일반적으로 선과 악의 대비를 바탕으로 우리가 그래야 마땅하다거나 또는 앞으로 그래야만 한다고 느끼는 세상을 이어주는 가교’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내용을 풀어갑니다. 이 글이 비춰주는 내용을 통해서 의사 증원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앞서 제시된 글에서 나타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분명하게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기 위해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라는 약속을 하고 의사가 됩니다. 즉 옆에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인간존중이 담겨있는 것이 의사를 표현하는 도덕과 양심의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국경없는의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의료 윤리 규범을 준수하여 활동하며, 특히 의료 활동 중 개인이나 집단에 해를 가하지 않을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어디에도 의사의 직무수행이 돈의 과다에 따라 수행되거나 연결될 수 없음을 표현합니다만 이번의 칼럼은 해답이 ‘고수익 보장’이라니 선언과 현실의 차이를 실감합니다. 의사라는 직군의 계급화, 보통 이상의 대우나 권리 등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의사에게 고합니다. 의사의 도덕과 양심은 무엇입니까? 정말 고소득 보장이 어렵기에 의대생 증원을 코로나 19로 전국이 아파하는 시간에 의사 가운을 던질 만큼 자유경제, 자본주의의 모습, 나아가 수익보장만이 의사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인지요. 인공지능으로 로봇이 대신하는 의술에 사람들이 달려갈 때가 멀지 않았는데도 죽어가는 생명을 던져버리고 집단행동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가요?

2020.10.12. 의대 고시를 치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의사고시를 집단으로 거부한 의대생이 아닌
의대교수들이 사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같은 날 대한 전공의 협의회에서 의대생 응시가 없으면 단체행동 돌입할 수 있다는 성명서 발표

저작권자 © 경북정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 / 30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