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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이해찬 대표 예방한 김종인 위원장 32년간의 악연, 두 ..
기획·연재

이해찬 대표 예방한 김종인 위원장 32년간의 악연, 두 인사 ‘뼈 있는 선문답’

이관순 기자 입력 2020/06/03 12:07 수정 2021.03.05 12:07


32년 악연
⇢1988년 서울 관악구 총선에서 이해찬 •김종인 격돌
⇢2016년 김종인 비대위에 의해 이해찬 대표 공전 배제
⇢2016년 무소속 출마 당선, 민주당 복귀 정권교체
⇢2020년 민주당, 통합당 공동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재격돌
⇢21대 국회, 집권당 대표• 제1야당 비대위원장으로 재회


6월 3일 이해찬 민주당 취임 인사차 방문한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
⇢ 7선 의원 관록 경험 풍부, 정상적인 개원되게 해달라(김 위원장)
⇢법은 기본적으로 지키면서 협의할 것 협의 (이 대표)
⇢3차 추경 중요, 조속 처리 협조해 달라(이 대표)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다(김 위원장)
⇢ (이 대표 앉은 자리 바라보며) 4년 전 내가 앉아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네(김 위원장)
⇢비대위원장 새롭게 맡으셨으니...(쓴웃음) (이 대표)

↑↑ 마치 굽이치는 험준산령의 능선과도 같은 32년간의 정치 역경을 넘나들며 모진 인연을 쌓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인사차 예방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서로 만났다.사진= 더불어민주당 캡처


[경북정치신문=이관순 기자] 
산에 페인 계곡은 인력으로 메울 수 있는 법이지만, 가슴에 페인 계곡은 인력으로 메울 수 없는 법이다.
마치 굽이치는 험준산령의 능선과도 같은 32년간의 정치 역경을 넘나들며 모진 인연을 쌓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인사차 예방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서로 만났다.

집권당과 제1야당을 이끄는 두 장수는 악수를 나누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하지만 예봉 대신 선문답이 더 날카로웠다.

지난 5월 30일 임기가 개시된 제21대 국회는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암초를 제거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 당장에 국회법대로 6월 5일 임시회를 개회해 의장단을 선출하고 이어 6월 8일까지 원 구성을 마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원칙론 사수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국회 운영의 노른자위인 예결위와 법사위에 대한 사전 절충 작업 없이는 임시회 본회의 개최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논란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67명을 비롯한 185명은 2일 오후 늦게 임시회 집회 신청을 했고, 국회사무처는 2020년 6월 5일 오전 10시에 임시회를 개회한다는 내용의 집회 공고를 했다.

국회법 일정대로 의장단 선출과 원구성을 마쳐야 6월 중 3차 코로나 19 추경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계산법과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존재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는 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미래통합당의 계산법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난 두 인사의 속내가 편할 리가 없었다.

↑↑ 마치 굽이치는 험준산령의 능선과도 같은 32년간의 정치 역경을 넘나들며 모진 인연을 쌓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인사차 예방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서로 만났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캡처

잠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던 두 인사의 화두는 원 구성 협상 등 현안으로 옮겨갔다.
김종인 위원장은 “7선으로 의원 관록이 가장 많으신 분이니, 과거의 경험을 살려 정상적인 개원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선제구를 날렸다. 민주당이 단독 개원에 돌입할 경우 미래통합당이 불참함으로써 불협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이해찬 대표는 “법은 기본적으로 지키면서 협의할 것을 협의하면 극복이 가능하다”며 국회법대로 개원 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코로나 19사태에 따른 3차 추경과 관련해서도 김 위원장은 추경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면서도 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면에는 국회법대로 5일 개원에 목을 매달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고, 이러한 요청을 더불어민주당이 뿌리칠 경우 추경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미 또한 함축돼 있었다.

“3차 추경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중요한 만큼 조석한 처리에 협조해 달라”는 이 대표의 요청에 대해 “내용을 보고하겠다”고 한 김 위원장의 답변은 불편한 심기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현안을 둘러싼 우회적 공방을 마친 후 김 위원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이 대표가 앉은 자리를 향해 “ 4년 전에는 내가 앉아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며, 과거의 모진 인연을 떠올리게 했고, 이해찬 대표는 얕은 미소를 머금었다.

4년 전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체제의 비대위는 이해찬 대표를 후보 공천에서 배제했다. 격앙한 당시 이 대표는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세종시 총선에서 승리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귀한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앞당겨 실시한 2017년 3월 16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키는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정권 교체의 꿈을 이뤄냈다.

3일 취임 인사차 이해찬 대표를 예방한 김종인 위원장의 만남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21대 국회 개원을 위한 임시회 개최 시기를 놓고 여야 간에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진행됐다.

과연 32년간의 모진 인연은 지속되는 것일까. 선한 인연을 새롭게 쓰는 것일까.
경행록에는 은의(恩義) 광시(廣施)요,인생하처(人生何處) 불상봉(不相逢)이라는 글귀가 있다.
“ 은의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디에 산들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라는 의미다.


↑↑ 마치 굽이치는 험준산령의 능선과도 같은 32년간의 정치 역경을 넘나들며 모진 인연을 쌓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인사차 예방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서로 만났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캡처

◇32년간의 모진 인연
이해찬 대표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인연은 1988년 제13대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평민당 후보였던 이 대표는 민정당 김종인 후보와 맞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이 대표의 승리였다. 반면 김 내정자는 27.13%라는 초라한 성적표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 더불어민주당 캡처

그로부터 16년 후인 2004년에는 김 위원장은 새천년민주당 제17대 총선 선거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이해찬 대표와 상봉을 했다. 이어 2012년 박근혜 대선 경선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헤어진 두 인사는 4년 후인 김 위원장이 2016년 20대 총선을 진두지휘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공천을 주도하면서 다시 상봉하게 됐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이해찬 대표에게 패했던 김 내정자가 28년이 흐른 2016년 총선에서는 공천권을 휘두르는 상석을 차지하고 앉은 것이다. 정치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우려했던 데로 김 위원장의 예봉(銳鋒)은 이해찬 대표를 비껴가지 않았다.

김종인 비대위가 이해찬 대표를 후보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다. 이 대표의 공천 배제 불복 및 무소속 출마가 현실화하면서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도 격화하는 등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격앙한 당시 이 대표는 김 위원장의 결정을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다.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공당의 결정은 명분이 있어야 한다. 합의된 방식에 따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는 안 된다. 저는 부당한 것에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저 이해찬은 불의에 타협하는 인생을 살지 않았다. 이제 잠시 제 영혼과 같은 더불어민주당을 떠나려고 한다. 이번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으며, 세종시 완성과 정권 교체를 위해 돌아오겠다”

결국 세종시 총선에서 승리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귀한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앞당겨 실시한 2017년 3월 16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키는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정권 교체의 꿈을 이뤄냈다.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 더불어민주당 캡처

김종인 비대위에 의한 공천배제와 무소속 출마 당선, 더불어민주당 복귀, 정권 교체 등 이 대표가 청신호가 켜진 도로를 쾌속 주행하는 동안 2016년 3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결정되면서 셀프 공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 위원장은 20대 총선이 끝난 후 당 대표직 추대론이 불거지면서 운신의 폭이 좁혀들었다. 결국 당내 반발을 수습하는 데 힘의 한계를 절감한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실시한 21대 총선에서 두 인사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공동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대척점에 서야 했고,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대승을 거둔 반면 미래통합당은 103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사실상 개인 이해찬 대표는 1988년 제13대 관악구 총선 승리,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김종인 비대위에 의한 공천 배제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 당선,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2020년 제21대 청선 압승 등 김종인 위원장과 맞대결에서 사실상 3전 3승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종인 위원장 역시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노태우 정권의 민자당 비례대표, 2004년 새천년 민주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2012년 박근혜 대선 경선 캠프 국민행행복추진위원회의 선거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16년 더불어민주당 20대 총선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0년 미래통합당 총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 여야를 넘나들며 킹메이커 역할론에서는 성공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와의 맞대결에서는 종종 얼굴을 붉히며 등을 돌려야 했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제 이해찬과 김종인은 거대여당 대표와 몸집이 야윈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직함을 달고 만나면 피하기 어려운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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