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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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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기획> 구미 전국체전 2021년 10월 8일 개막, 구미체육인의 위대한 저력 반드시 코로나 19 극복 전국체전 역사 남겨야

이관순 기자 입력 2020/10/06 00:58 수정 2020.10.07 00:58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2021년 10월 8일 ~ 14일
제4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2021년 10월 20일 ~ 25일
17개 시•도와 해외동포 선수단 3만여 명 참가 예정
하지만 장밋빛 구상일 수도
올림픽 위원회, 1년 연기한 일본 올림픽 간소화 방안 마련
대한체육회 •정부, 코로나 19 지속하면 일본 올림픽 준용 가능성
구미체육인들 화합의 힘으로 대응 및 성공전략 마련해야


↑↑ 서울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전 개막식/ 사진 = 대한체육회 제공


[경북정치신문 = 이관순 기자]  코로나 19로 연기된 제102회 구미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 체육대회)와 제4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최 일정이 확정됐다.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5일 제102회 전국체육대회를 2021년 10월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 구미운동장 등 도내 시•군 71개 경기장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내년 대회에는 또 17개 시•도와 18개국 해외동포 선수단 등 3만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아울러 제4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2021년 10월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 구미시민운동장과 도내 11개 시•군 경기장에서 열린다. 선수단과 임원 및 보호자 등 8,500명이 일정을 함께한다.

◇좌절 딛고 일어선 경북도와 구미시
올 초, 대구 신천지발 코로나 19가 재확산된 데다 펜데믹(세계적 대유행) 으로까지 번지자, 제10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가 암울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특히 올림픽위원회가 수조 원대의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2020년 7월 24일 개최 예정이던 일본 도쿄 올림픽 연기를 최종 결정하자, 개최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해 온 경북도와 구미시는 대회 연기 쪽으로 급선회했다.

일부에서는 비대면 대회라도 개최해야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수백억 원 대의 기체를 발행하면서까지 대회 준비에 행정력과 재정 지출을 올인해 온 구미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기간에 걸친 지역 경기 침체의 출구전략을 전국체전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구미시와 경북도가 체전을 연기하기로 했지만, 제101회 대회 이후 개최를 준비해온 타 지자체와의 합의는 풀어나가야 할 또 다른 과제였다. 우려했던 대로였다. 지방선거를 7개월 남겨놓고 대회 준비를 해온 울산시의 난색 표명은 최대의 복병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수차례에 걸친 경북도, 구미시,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득 노력은 결국 울산시의 연기 합의(순연)라는 결론을 도축시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전국체전 개최 예정지인 2020 경북, 2021 울산, 2022 전남, 2023 경남, 2024 부산 등 5개 지자체의 대표들은 지난 7월 초 회의를 열고 전국체전을 1년씩 순연하는 데 합의했다. 대회 횟수는 101회에서 102회로 조정했고, 전국종합체육대회 규정에 따라 소년체육대회와 생활체육 대축전도 함께 미뤄져야 하지만 1년 연기 끝에 개최하는 2021 경북 전국체전에서는 취소하기로 했다.
전국체전은 1920년 일제강점기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를 시작으로 중일전쟁 기간과 6•25전쟁 첫해를 제외하고 매년 열렸다. 대회 연기는 전국체전 100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제101회 전국체전은 오는 10월 구미 등 경북 도내 12개 시․군 71개 경기장에서 17개 시․도와 18개국 해외동포 선수단 3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1천5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치러질 예정이었다.

◇코로나 19로 연기한 구미 전국체전, 코로나 19 극복 구미 전국체전으로 전환해야
1920년부터 1956년까지 30여 년 동안 서울에서 전국체전을 개최했다. 취약한 지방의 체육 관련 인적, 물적 인프라로서는 전국체전 개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첫 전국체육대회가 열린 것은 1957년 경남 부산대회부터였다.
스포츠의 균형 발전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시도대항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매년 열리는 전국체전은 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상당한 의미가 부여됐다.

전국체전은 우리나라가 세계적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기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저력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세계 5번째로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 세계 4대 스포츠를 모두 개최하는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이 강화됐다. 이처럼 전국체육대회는 해를 거듭하면서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 마련이라는 당초의 취지에 더해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디딤돌 마련이라는 또 다른 호재가 부여됐다.

구미시가 제101회 전국체전을 연기 여부를 놓고 고민을 해야 했던 것도 장기간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 경제의 출구전략을 전국 체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회 개최를 강행하더라도 개회식 미개최와 18개국 해외동포 선수단이 불참하는 전국 체전은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구미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전국체전 개최 예정지인 2020 경북, 2021 울산, 2022 전남, 2023 경남, 2024 부산 등 5개 지자체의 대표들은 지난 7월 초 회의를 열고 전국체전을 1년씩 순연하는 데 합의했다./ 사진 =경상북도 제공

◇구미 재도약 위한 발판 마련의 기회, 전국체전 통해 구미 재도약시킨 구미 체육인으로 기록되어야
구미체육회는 민선체육회장 선거를 거치면서 화합보다는 갈등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특히 일부 체육인들이 선거 과정에서 소위 ‘정치 성향’을 활용하거나 악용하면서 체육인 간의 갈등을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민선체육회장 취임 직후 불어닥친 코로나 19사태가 대면을 통해 화합을 도모해온 체육회 특유의 특성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갈등의 골은 아직도 잔존해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채육인들을 중심으로 침체한 지역 경기의 출구를 전국체전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바람에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화합 모드로 전환해야 하고 , 민선체육회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잖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선수단을 제외한 대회 참가인원의 규모를 최대 15%가량 줄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참가인원을 줄이는 내용을 포함한 대회 간소화 방안을 마련하고 IOC의 도쿄올림픽 조정위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라는 것이다.
주요 간소화 방안은 선수단을 제외한 대회 참가인원을 10~15% 줄이는 동시에 올림픽 개·폐회식 시 초청하는 인원을 20% 가까이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논의된 간소화 방안에는 ▲선수촌 입촌식 생략 ▲선수촌 내 청소 서비스 축소 ▲선수 훈련장 개장 연기 ▲경기장 장식물의 축소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19가 지속할 경우 이러한 일본 올림픽 대회 간소화 방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로 하여금 전국체전에도 준용토록 하는 지침서로 활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럴 경우 전국체전을 통해 침체한 지역 경기의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초의 구상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개회식 축소나 취소, 해외 동포단 불참 권유 등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경우 구미로서는 대회를 연기한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부 체육인과 오피니언 그룹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구미 체육인들이 서둘러 화합하고, 화합력을 발휘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 수립에 만전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미체육인들은 구미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시민들에게 힘과 용기, 한기 가득한 지역 경제에 모닥불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구미체육인들은 위대했다.

◇체육인들의 피와 땀의 역사, 구미 체육 신화 써 온 저력
사반세기의 세월을 넘기면 역사가 된다. 어느덧 도민체전 57년의 역사는 아득한 세월이 됐다. 유구한 도민체전의 역사 속에서 구미(선산)체육인들이 흘린 피와 땀은 소중한 가치였다. 구미시와 선산군 도농통합 이후 14번 치러진 도민체전에서 여섯 번에 걸쳐 우승의 영광을 시민들에게 안겼으니, 가히 체육의 신화를 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개 시군 중 가장 뒤늦게 시 승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짧은 역사를 극복하며 무수한 기록을 남긴 체육인들은 ' 2020년 성공한 구미 전국체전'을 위해 오늘도 피와 땀을 쏟고 있다,
역사는 구미체육인들의 피와 땀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도민체전 역사>
제1회 경북 도민체전을 치루기 위해 당시 최종 주자인 박민태가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에서 성화 채화를 한때는 1963년이었다.
이 시기의 국내정세는 혼란의 절정이었다. 1962년 3월 윤보선 대통령이 사퇴하자, 국내정치는 박정희 대행체제로 급변했고, 결국 1963년 12월 7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제5공화국 시대를 개막했다.
이러한 정치 환경 속에서 제1회 경북 도민체전을 개최한 곳은 대구였고, 대회 결과 남대구 1위, 중대구 2위, 김천시가 3위를 차지했다. 1949년 8월 15일 같은 날에 대구와 함께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로 승격한 김천시의 위세를 역력히 입증한 결과였다.

구미면에서 구미읍으로 다시 시로 발전을 거듭한 구미시는 도민체전 27년만인 1989년 실시된 제27회 대회에서 최초로 시부 2위를 기록했고, 선산군 역시 최초로 군부 2위를 마크했다.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 구미시로 탄생해 처음 맞은 도민체육대회는 1996년 제 34회였다.
1995년 도농 통합을 계기로 구미시는 낙동강 벌에 산업근대화의 신화를 이룬 경제역사와 필적할 만큼 기록적인 체육 역사를 써 왔다. 도민체전 역사상 기라성 같았던 포항시, 김천시, 안동시, 경주시, 경산시를 제압하면서 3연패의 위업 달성과 함께 도민체전을 유치했고,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는 도민체전 2연패 달성과 함께 전국체전 유치라는 겹경사를 시민에게 선물했으니 말이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달라진 도민체전
1963년부터 지난해 열린 제56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도민체전은 두 번에 걸친 행정구역 조정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행정구역 체제 개편 때마다 대회에 참여하는 시•군수는 당연히 조정되어야 했다.

▷1981년 경북-대구 행정구역 분리까지
1963년 제1회 도민체전을 시작으로 1981년까지 경북도 내에는 대구시를 비롯한 11 개시, 24개의 군이 있었다. 이때까지 18번의 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실제로 열린 대회는 16회였다. 1964년에는 심한 가뭄으로 대회를 보류시켜야 했고, 이어 1978년에도 제7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유치로 도민체전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구와 함'께 도민체전을 치른 1981년까지 16회 대회 기간 중 1966년 경주와 1974년 포항을 제외하면 대회 개최지는 대구였다. 그만큼 타 시군의 경우 도민체전을 치를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6회 대회가 있기까지 우승은 포항시가 7회, 남대구가 6회, 북대구 2회, 경주시 1회 등이었다. 특히 이 기간 중 시부에서는 남대구와 북대구, 중대구, 포항시, 경주시, 안동시가 자웅을 겨루면서 1~3위를 거머쥐었다.

군부에서는 예천군과 상주군이 득세를 했다. 16회 대회 중 예천군 5회, 상주군 5회, 경산군 3회, 의성군 1회, 문경군이 1회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특히 문경, 의성, 예천, 상주군이 1~3위를 차지하는 군세를 과시했다. 선산군은 등위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
*1963군부에서는 예천군과 상주군이 득세를 했다. 16회 대회 중 예천군 5회, 상주군 5회, 경산군 3회, 의성군 1회, 문경군이 1회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특히 문경,의성, 예천,상주군이 1-3위를 차지하는 군세를 과시했다. 선산군은 등위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
*1963- 1981년 7월 1일 경북, 대구 행정구역 분리가 되기까지 16개 대회 중 시부/포항시 1위 7회, 남대구 7회, 북대구 1회, 경주시 1회-군부- 상주군 5회,예천군 5회 , 경산군 3회 ,의성군 1회, 문경군 1회

▷1995년 시군통합이 있기까지
대구시가 경북도에서 빠져나간 1981년 19회 대회부터 제76회 전국체전 포항개최로 33회 도민체전이 중단됐던 1995년까지 도민체전에는 10 개시, 24군이 참가했다.
1978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합쳐 시로 승격된 구미시는 봉사 행정의 내실화와 수출산업 지원, 도시개발 촉진에 역점을 두고 시정을 펼치던 1984년 당시 박순태 시장이 구미시와 선산군 사상 처음으로 22회 도민체전을 유치했다. 하지만 당시 대회에서 시부 1~3위는 포항, 경주,안동이었고, 군부는 경산, 상주, 문경군이었다. 대회를 유치했으나 열악한 여건 때문에 구미시는 물론 인접 지역인 선산군 역시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5년 후 도민체전을 두 번째 유치한 1989년 27회 대회에서는 구미시와 선산군이 개최지 및 개최지 인접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88년 6월부터 90년 7월까지 2년 1개월을 역임한 서상은 구미시장은 역대 시장 중 최초로 문화 및 체육 창달에 깊은 관심을 보인 시책을 펼쳤다.
힘입어 27회 대회에서 구미시는 열악한 여건을 딛고 포항시에 이어 시부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회 때마다 구미시를 멀찌감치 밀어내던 경주시와 안동시를 추월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인접 지역인 선산군 역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경주군에 이어 군부 2위를 차지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27회 대회에서 선산군의 수립한 2위의 기록은 선산군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역사였다.

특히 대구와 행정구역을 분리한 1981년부터 시군통합 행정구역 개편이 있던 1995년까지 기간에는 또 가장 많은 횟수의 대회를 중단했다. 15번의 대회 중 1985년 23회 대회는 제14회 전국 소년체육대회 경북 유치, 1986년 24회 대회는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 개최로 도민체전이 중단됐다. 이어 1995년 제33회 대회는 제76회 전국체전 포항개최로 중단되어야 했다.
이 기간에 열린 대회에서 시부는 포항시와 안동시, 경산시와 경주시가 1이 기간 중 열린 대회에서 시부는 포항시와 안동시, 경산시와 경주시가 1-3위를 나눠가졌다. 구미시, 영주시 2위 1회, 구미시, 영주시, 김천시가 3위 1회에 그칠 정도였다.
*1982년부터 시군통합이 된 1995년까지 11번 대회 중 시부-포항 1위 5회, 안동시 5회, 경주시 1회- 군부- 경산군 6회, 예천군 2회 , 경주군1, 상주군 1,

▶1995년 시군 통합 이후 지금까지
1995년에는 시군통합 행정구역 개편이 있던 해였다. 1981년 7월 1일 대구시를 출가시킨 경북도는 14년 후인 1995년에는 10 개시, 24개군을 10개시 13개 군으로 핵가족화했다.
시군통합 시대를 맞은 당시 구미시는 시책사업 추진에 혼선을 겪었다. 박병련 시장은 통합 전 시장과 통합 후 시장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94년 1월 1일 통합 전 시장으로 취임한 박 시장은 통합 이후인 95년 1월 1일부터 95년 4월 19일까지 통합전후를 합쳐 1년 4개월 동안 재임했다. 부하 공무원을 엄격하게 다루기로 정평이 났던 박 시장은 청렴, 무사, 친절 신뢰, 책임 봉사를 시정방침으로 정했다.

뒤를 이어 95년 4월 20일부터 95년 6월 30일까지 관선 시장으로는 최단기간인 2개월 동안 재임한 박미진 시장은 새로운 시정방침을 정하지 않은 채 박병련 전임시장의 방침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70일 후면 민선 시대가 열리는 역사적인 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4명의 관선 시장 시대를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고 김관용 시장은 95년 7월 1일 민선 시대를 처음 열었다.
시군통합을 통해 시세를 넓힌 구미시는 통합하던 해인 1995년 전국체전 개최로 대회가 중단된 33회 대회 이후인 1996년 제34회 대회부터는 시세에 걸맞은 저력을 발휘해 나갔다.

1963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시군통합이 있기까지인 1995년 제33회 대회까지 구미시는 1번에 걸쳐 각각 시부 2위와 3위, 선산군은 군부 2위를 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도민체전에 관한 한 미력한 자치단체로 평가절하되던 구미시는 그러나 시군 통합 이후 처음 실시된 1996년 제34회 대회에서는 안동시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도민체전 역사상 기라성의 역사를 써온 경주시, 김천시, 포항시, 영주시, 경주시를 물리치면서 탄탄대로를 예고한 때였다.
이후, 2001년 제39회 대회를 구미에 유치했으면서도 포항에 눌려 2위를 차지하는 데 그쳐야 했던 구미시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인 제41,42,43회와 2008년 제46회, 2017년 제55회,2018년 제 56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시군별 등위를 적용한 14번의 대회 중 구미시 1위 6회의 실적은 낙동강 벌에 산업근대화의 기록을 쓴 것에 비유될 정도였다. 피와 땀 속에 자신의 삶을 묻은 구미체육인들의 소중한 역사였다,

▶도민체전 구미(선산)기록
▻1989년 제27회/ 구미시 시부 2위, 선산군 군부 2위 <도민체전 사상 최초>
▻1993년 제31회/ 구미시 시부 3위
▻1996년 제34회 / 구미시 시부 2위

<통합 이후 구미시 성적>
▻1998년- 1999년, 제36회-제 37회 2위
▻2000년 제38회 3위
▻2001년 제39회 2위
▻2003년 - 2005년, 제 41회- 43회 1위
▻2007년 제45회 2위
▻2008년 제46회 1위
▻2009년 -2011년, 47회-49회 2위
▹2012년 제50회 2위
▹2013년 제51회 3위
▹2014년 제52회 2위
▹2015년 제53회 2위
▹2016년 제54회 2위
▹2017-2018년 제55회,56회 1위
▻구미시 도민체전 유치/ 1984년 22회, 1989년 27회, 2001년 39회, 2012년 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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