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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럼> 백수 일기 16 -민주 사회주의?(democratic-socialism?)

김경홍 기자 입력 2021/01/11 21:04 수정 2021.01.11 21:04

[칼럼 = 김영민 전 구미, 대구 YMCA 사무총장] 이번 미국의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트럼프의 망나니 짓거리에 가까운 억지와 그로부터 비롯된 미국에 대한 민주주의의 실망, 나아가 200년 동안의 아메리카 드림에 대한 철저한 배신감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만 새로이 백악관의 주인이 된 분이라 해서 미국이라는 세상이 달라질까요? 아니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미국인이 살아가는 삶이 절대 달라지거나 미국 내에 철저하게 뿌리박혀있는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의 모순된 모습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닐 듯 싶습니다.

최근 미국의 서든 캘리포니아대학교 마샬 경영 대학원 석좌교수 폴 애들러는 미국의 경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윤의 극대를 가르치는 경영학 교수의 관점에서 이제 미국의 경제문제에 대한 해답을 ‘민주사회주의’라는 말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는 ≪1%가 아닌 99%를 위한 경제≫(한은경, 김윤진 공역, 21세기 북스, 2021)에서 미국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부유층의 금권정치와 다를 바 없다’고 규정하고 경제적 불합리로 인한 부의 불평등은 더욱 극심해지면서 ‘가진 것이 없는 99%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규정합니다.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불평등은 세계인구의 단 8명이 보유한 자산의 총합과 전 세계인구 중 하위 50% 보유한 종합자산과 맞먹는다는 사실, 나아가 2017년 미국인 10명 중 4명은 남에게 돈을 빌리거나 재산을 매각하지 않고는 갑자기 발생한 400달러의 비용을 감당한 여력이 없고, 미국 가정의 12%가 식량 불안정 상태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실직자의 수가 10년 단위로 계속 증가하며(실질적인 실업), 결국 모든 생산가능인구를 계산하면 전체 실업률은 12%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트럼프에 열광하는 러스터 벨트의 노동자의 의사당 침입은 이런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지요), 2019년 미국에서는 매일 밤 50만 명이 넘는 노숙자가 노상에서, 긴급 대피소에서, 혹은 임시 주거시설에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건강 상황은 더욱 심각하여 실업자의 사망위험이 고용된 사람의 그것보다 63%가 더 높은 것으로 실직, 노숙, 영양실조 등의 악순환은 미국민의 10% 이상을 죽음의 잔치에 초대되어있는 형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생태계 붕괴나 녹아내리는 빙하, 사라지는 산호초,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 등으로 솔직하게 말해 이제는 ‘벼랑 끝에 몰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비록 환경학자들이 위험할 것이라는 경고 수준의 말을 하지만 실제는 막다른 골목까지 왔다는 것이지요)
나아가 기후변화로 매년 4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2100년에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10억 명이 살던 곳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지 문제에서 미국은 더 입을 열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상황입니다만 미국에서 노인에 대한 복지 문제, 의료문제(오바마 케어로 겨우 빛을 보는 듯하다가는 사그라져 가는 철저히 돈에 의한 목숨 바꾸기)는 미국의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각해지는 사회 분열은 미국의 남녀 24%가 돈과 노동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결과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인종 문제로 흑인의 목숨에 대한 가책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는 중론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유색인종이기에 약 100배의 더 심한 형벌을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통계를 통해서 더 미국은 민주주의의 보루도 아니며 더구나 자유 시장 경제니 아메리칸 드림의 대상이 아닌 절박하면서도 처절한 상황에 부닥친 모습을 구체적으로 책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자본주의를 가르치는 저명한 교수의 해결책은 ‘위기의 근원이 자본주의라면 해결방안은 더욱 급진적인 민주사회주의(democratic-socialism, 마르크스주의에 의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사회주의)로의 변혁이라고 단언합니다. 즉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99%를 위한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인 투자자의 의견에 따르는 이사회나 최고 경영자의 결정권이 아닌 기업의 사적 소유권을 사회화된 공공 소유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심스레 글을 이을 수밖에 없음은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라는 말만 해도 으레 치를 떨며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낙인을 씌우고, 그것들을 주도하는 이들이 특정 종교의 지도자라는 사람들로 구성되며 데모라는 이름의 무질서 광란에 성조기를 같이 흔드는 모습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책에 주는 무게는 참으로 무겁습니다, 우리라는 사회에서 새로이 돌아보아야 할 세상 어쩌면 그 대안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듭니다.

20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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